오래도록 침묵하던 주민규가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골을 터뜨렸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서울=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긴 여름의 끝이 보이고 있다. 아직 낮은 무덥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으로는 살만하다 싶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폭염처럼 숨 막히는 시간을 보내던 베테랑 스트라이커 주민규가 오랜만에 갈증을 해소했다. 덕분에 소속팀 대전하나시티즌도 안방에서 신나게 승전고를 울렸다. 기록상으로는 똑같은 1골과 1승이지만, 주민규와 대전에게는 아주 특별할 포인트가 작성됐다.

대전은 지난 10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5' 25라운드 수원FC와 홈 경기에서 3-2로 승리했다. 역전승이었다.

11승9무5패 승점 42가 된 대전은 김천(승점 40)을 끌어내리고 2위 자리를 되찾았다. 반면 최근 4연승 상승세를 타면서 하위권 탈출을 도모하던 수원FC는 재역전패 아쉬움 속 10위(승점 28)에 머물렀다.


이날 대전은 킥오프 후 1분도 안돼 상대 수비진의 호흡 불일치를 놓치지 않은 최건주의 득점으로 기분 좋게 출발했다. 하지만 전반 막바지, 여러 가지로 꼬였다.

핵심 수문장 이창근이 골대와 충돌하면서 경기에서 빠졌고, 새로운 골키퍼가 투입돼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수원FC 외국인 선수 싸박과 루안에게 연거푸 득점을 내줘 1-2로 역전을 허용했다. 5월24일 대구를 2-1로 제압한 이후 홈에서 2무2패로 부진하던 대전으로서는 또 불안해지는 흐름이었다.


최근 안방에서 결과가 좋지 않았던 대전도 오랜만에 홈팬들에게 좋은 선물을 안겼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위기의 순간 베테랑 주민규가 빛을 발했다. 후반 31분 김준범이 박스 안으로 가볍게 넣어준 패스를 주민규가 오른발로 마무리, 귀중한 동점골을 터뜨렸다. 5월27일 이후 7경기 동안 골맛을 보지 못하던 주민규의 시즌 11호포가 결정적인 순간 나왔다.

마음고생을 털어낸 주민규는 후반 36분 측면에서 넘어온 크로스를 미끄러지면서 오른발 발리슈팅으로 연결, 되살아난 감각을 보여줬다. 그리고 1분 뒤에는 하프라인 아래에서 골키퍼가 전진한 것을 보고 장거리 슈팅을 시도했는데 아쉽게도 크로스바를 때렸다.

주민규를 앞세워 분위기를 끌어올린 대전은 후반 38분 결국 역전에 성공했다. 하프라인 아래에서 이명재가 수원FC 쪽으로 길게 넣어준 패스를 김준범이 기막힌 터치로 잡아낸 뒤 골키퍼 키를 살짝 넘기는 슈팅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대전은 한숨을 돌렸다. 최근 10경기에서 2승5무3패로 부진, 선두 경쟁은 고사하고 2위 싸움도 위태롭던 대전 입장에서는 빠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고도, 또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타격이 컸다. 안방에서 거둔 78일만의 승리, 면목 없던 홈 팬들에게 오랜만에 선물을 안겼다는 것도 값진 성과다. 그 중심에 주민규가 있었다는 것이 또 고무적이다.

개막전부터 멀티골을 터뜨린 주민규는 시즌 초반 11경기에서 8골을 몰아치는 괴력을 발휘하면서 득점 레이스에서 치고 나갔다. 하지만 6월 이후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다. 5월27일 포항전을 마지막으로 득점포가 가동되지 않았고 이때 팀 성적도 좋지 않았으니 심리적인 부담이 더 컸다.


똑같은 1골과 1승이지만, 이날의 포인트는 더 가치 있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가뜩이나 체력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다니던 노장이 여름의 시작과 함께 부진했으니 말들이 더 많았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갑갑한 터널에서 탈출했다. 심지어 이날은 주민규가 6경기 만에 풀타임을 소화한 경기였다.

주민규 동점골을 어시스트하고 역전 결승골까지 터뜨린 김준범의 승리 지분이 크지만 부활포를 가동한 베테랑의 공도 박수받을만 하다. 요즘 아침저녁 시원한 바람처럼, 주민규와 대전에 다시 에너지를 채워줄 수 있는 골과 승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