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수주를 목적으로 지출하는 막대한 홍보 비용과 네거티브 선전이 확산되고 있다. 사업주체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스카이전망대에서 본 아파트들 모습. /사진=뉴시스
건설경기 침체로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분야도 건설업체들의 선별 수주 기조가 뚜렷해져 수의계약이 속출하고 있지만 복수 입찰이 성사된 경우 치열한 출혈 경쟁은 여전하다.

선심성 공약과 천문학적 홍보 비용이 조합원의 사업비와 분담금으로 전가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 서울시 등 관할 지자체가 행정 제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효과가 미미해 시공사의 자정 노력과 사업주체들의 정보 해석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형 건설업체들이 강남·용산 등 핵심지 정비사업의 선별 수주 전략을 강화하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네거티브 선전을 확산시키고 있다. 시공사 선정 과정은 조합원의 다수결 투표로 이뤄져 경쟁사에 대한 견제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한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대형 사업의 계약을 따내기 위한 노력이지만 지금까지 경쟁 입찰에서 진흙탕 싸움이 안된 적이 없다"면서 "한쪽에서 비방전이 시작되면 표적이 된 시공사에 해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방어만 할 수는 없다 보니 다시 공격을 하게 되는 패턴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일부 대형 건설업체들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대행사에 수십억원 보수를 내고 네거티브 선전을 의뢰했지만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 발을 빼는 경우도 있다.


해당 관계자는 "정비사업 수주를 담당하는 사업본부가 대행사를 선임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면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비방 기사가 조합원 카톡방을 통해 유포되고 이후 아니면 말고 식으로 삭제돼도 회사 이미지 훼손과 조합원 표심에는 영향을 줄 수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필요"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경쟁사에 대한 비난이 격화하면서 관할 지방차치단체의 행정 제재도 강화되고 있지만 실제 효과는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남산 서울타워 전망대에서 본 건설현장 모습. /사진=뉴시스
'일단 따고 보자'는 식의 선심성 공약은 조합원에게 혼란과 피해를 주고 있다. 이에 행정기관이 개입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올 1월 한남4구역 재개발 수주 경쟁에서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용산구청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계획보다 빠르게 홍보관을 폐관했다. 강남구청도 압구정2구역을 상대로 '홍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개포우성7차에는 과잉 홍보를 경고했다.

서울시는 '시공자 선정 기준'에 따라 개별 홍보를 금지하고 행정 지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상 허위·과장 정보 제공에 대한 처벌 근거가 있다"면서 "경쟁사 비방 등 행위를 적발 시 시공사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비방의 경우 명확한 증거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실제 처벌까지 간 사례를 확인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비사업에 대한 조합원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공정 경쟁과 질서 확립이 필요하다는 자정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업주체가 정보 판단 능력을 높이는 리터러시 교육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경제금융·도시연구실 연구위원은 "선거에서 네거티브는 늘 있었고 당연한 현상이라고 본다"면서 "투표 과정에 문제 제기를 통해 조건이 보완되는 측면도 있어 조합원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조합은 조합원에게 계약 조건의 설명 의무와 책임을 가져야 하고 한국부동산원의 컨설팅 제도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고 제언했다.

시공사 선정 투표는 조합원이 자산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인 만큼 향후에도 개선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각에서 입찰 공고 이후 시공사 선정 총회까지 기간을 줄여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수도권 핵심 정비사업을 최상위 시공사들만 독식하게 된 배경에는 홍보 활동 제한 등 규제의 영향이 크다"며 "추가 제재는 대형사에 더욱 유리한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