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수많은 역할에 도전하는 것이 배우의 본질입니다. 제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바쁘지요. 그만큼 뭐든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오는 9월, 원로 배우 박근형(85)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무대에 오른다. 그는 배우 신구(89)와 함께 600일 동안 이어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불과 2주 전에 마쳤다. 31개 도시에서 139회 공연을 소화한 뒤라 쉴 법도 하지만, 아직 안 해본 역할에 도전하고 싶은 열망이 크다고 했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배우 박근형·김병철·이상윤·최민호 등이 참석했다.
이 작품은 사무엘 베케트(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유쾌하게 재해석한 코미디 연극이다. 미국 배우이자 극작가 데이브 핸슨의 대표작으로, 2013년 뉴욕 국제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후 영국·헝가리·이탈리아 관객과 만났으며, 국내에선 지난해 초연했다.
공연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장의 분장실에서 연출자를 기다리는 언더스터디(대역 배우) '에스터'와 '밸'의 모습을 그린다. 무대 뒤에서 한없이 기다리는 두 배우는 예술·인생·존재와 같은 주제의 질문과 씨름한다.
"소외돼 가는 사람들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박근형은 '에스터' 역에 대해 "곧 사라져가는 노(老)배우인데, 어쩌면 저일지도 모른다"며 "이 대역 배우는 무대에 서 본 적이 없어, 하염없이 무대에 오를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외되어 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심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저와 비슷한 처지라는 생각이 들어 '에스터 역, 내가 하겠다'고 손을 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작품은 그의 소극장 데뷔작이기도 하다. "제가 19살에 연극을 시작한 이후 66년 동안 이렇게 좁은 극장에서 공연하는 건 처음"이라며 "옛날에 다방에서 1인극을 해본 적은 있지만, 이번에 소극장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하게 됐다"며 웃었다.
박근형은 후배 연극인들을 향한 남다른 마음도 전했다.
"제가 연극을 처음 시작했을 때 배고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대학로의 젊은 연극인들은 그 당시 제가 했던 고생을 그대로 그대로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제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젊은 연극인들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최민호 "'밸' 연기하며 연습생 시절 떠올라"
최민호(33)는 이날 "저는 이번 재연 공연에서 유일한 경력직"이라며 웃었다. 지난해에 이어 같은 작품에 다시 서게 된 소감에 대해 "작년에는 연극이 처음이라 몰랐던 부분이 정말 많았다"며 "올해 경험치가 조금 쌓인 만큼 초연 때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맡은 '밸' 역과 관련해 "운명과도 같은 배역"이라고 했다.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연습생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며 "그 시절에 저는 '언젠가 무대에 올라 많은 분이 저를 알아봐 주셨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열망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연극을 처음 시작한 것은 작년이지만, 그 전부터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며 "연극은 제게 늘 도전하고 싶은 분야"라고 덧붙였다.
'에스터' 역에는 박근형·김병철이 출연한다. 김병철은 이번 작품으로 9년 만에 무대에 복귀한다. '밸' 역은 이상윤·최민호(샤이니 민호)가 맡는다. 무대 조감독 '로라' 역에는 김가영·신혜옥이 이름을 올렸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오는 9월 16일부터 11월 16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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