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c)Dario Acosta(롯데문화재단 제공)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저는 부상, 어려운 레퍼토리, 자기 의심의 순간 등 많은 도전을 겪었어요. 그러나 음악 그 자체가 언제나 절 일으켜 세웠습니다."
올해 국제 무대 데뷔 50주년을 맞은 '세계 피아노계의 거장' 예핌 브론프만(67)에게 반세기 음악 인생에서 가장 도전적이었던 순간에 관해 묻자, "숱한 어려움이 있었으나 피아노와 제가 사랑하는 작품들로 돌아올 때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내한 연주회를 앞두고 진행한 국내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태어난 브론프만은 7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1973년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2년 뒤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폭발적인 테크닉과 섬세한 서정성을 겸비한 연주자로,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로 불리며 세계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브론프만은 오는 9월 2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지난 2023년 네덜란드 명문 악단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와 함께 내한해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적이 있지만, 협연 아닌 솔로 무대는 2001년 이후 24년 만이다.

피아노 연주 중인 브론프만(c) Oded Antman(롯데문화재단 제공)



"빛의 세계 같은 드뷔시…폭발적 강렬함 지닌 프로코피예프"

이번 리사이틀은 브론프만의 예술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무대다. 낭만주의 대표 작곡가 슈만과 브람스, 프랑스 인상주의의 거장 드뷔시, 러시아 정통 피아니즘의 정수를 잇는 프로코피예프의 작품들로 구성된다.

브론프만은 1부에서는 슈만의 '아라베스크 C장조, Op.18'과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3번 f단조, Op.5'를 통해 깊이 있는 서정과 내면의 열정을 들려준다. 2부에선 드뷔시의 '영상 제2권, L.111',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7번 B♭장조, Op.83'으로 근대 피아노 음악의 정수를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음악적 표현이 상이한 드뷔시와 프로코피예프의 작품에 대해 그는 "드뷔시의 영상 2권은 섬세하게 변화하는 빛의 세계와 같고, 프로코피예프의 7번 소나타는 전쟁 시기의 폭발적인 강렬함을 지니고 있다"며 "그러나 두 작품 모두 리듬, 구조, 색채에 있어 탁월한 감각을 공유한다"고 했다.

이어 "드뷔시 뒤에 프로코피예프가 이어질 때, 그것은 마치 음향의 충격파처럼 느껴지며, 바로 그 극명한 대비가 프로그램을 하나로 묶는 요소가 된다"고 덧붙였다.

2015년 브론프만이 런던 심포니와 협연 당시 핏자국이 남은 피아노 ⓒslippedisc 캡처(롯데문화재단 제공)


"''피 묻은 피아노' 사건…음악가로서 계속 배워 나갈 것"

브론프만의 연주회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2015년 10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당일, 그는 날카로운 물체에 손가락이 베이는 사고를 당했다. 건반 곳곳에 핏자국을 남길 만큼 큰 부상이었지만, 그는 끝까지 흔들림 없는 연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와 관련해 다친 손가락으로 연주를 마친 원동력을 묻자 "그 순간에는 멈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며 "음악이 저를 이끌었고, 관객과 오케스트라가 함께하고 있었다, 그 연결을 결코 놓칠 수 없었다"고 답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음악적 원칙에 대해서는 "악보에 대한 정직함, 작곡가에 대한 존중, 그리고 음악 속 더 깊은 의미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그래미상과 에이버리 피셔상 등 세계적 권위의 음악상을 두루 받고 '거장'의 타이틀까지 얻은 이 피아니스트의 목표는 무엇일까. "제 목표는 늘 같다"며 "계속 배우고, 음악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하며, 음악에 대한 진실을 가능한 한 진솔하게 청중과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브론프만은 국내 관객을 향한 애정도 드러냈다.

"한국 관객은 예술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깊은 존중을 지녔어요. 마치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났지만, 곧바로 마음이 통하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듯하지요. 가슴이 정말 벅찹니다."

예핌 브론프만 내한 리사이틀 포스터(롯데문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