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한국과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최종 합의했다. 미국이 앞서 일본·유럽연합(EU)과 체결한 자동차 관세율과 같은 수준으로 한국도 유사한 조건을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한 달이 지나도록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지 않으면서 현장에서는 여전히 높은 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합의된 15% 관세를 하루빨리 시행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고율 관세 부담은 물론 수출 불확실성으로 인해 물량·공급망 조정 등 주요 사업 계획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지난달 대미 자동차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4.6% 감소하며 5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한미 정상회담 일정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면서 관세 시행 시점이 구체화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왔다. 정 회장은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21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 지난달에는 정부의 관세 협상 지원을 위해 직접 워싱턴을 찾는 등 대미 관계에서 여러 차례 힘을 보탠 바 있다. 그러나 회담이 안보, 국방, 조선 협력 위주로 진행되면서 자동차 관세 관련 뚜렷한 진전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2분기 미 관세로 인한 현대차그룹의 영업이익 감소분은 현대차 8282억원, 기아 7860억원으로 집계됐다. 두 회사의 합산 손실만 1조6000억원대로 관세 인하 시기가 늦어질수록 막대한 추가 손실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15% 관세 적용 시점을 앞당기는 것만으로도 수천억원대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대차·기아는 내달 말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로 인한 부담도 떠안게 됐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세액공제 인센티브가 사라지면 전기차 구매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향후 미국 내 전기차 판매가 약 37% 감소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지난 7월 대미 전기차 수출은 164대로 전년 동월(6209대) 대비 97% 급감하며 하락세를 보였다.
자동차와 같은 품목 관세의 경우 세부 협의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협상을 진행 중인 만큼 단기간에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EU 사례처럼 조건부 합의를 통해 관세 시행 시점이 정해질 것으로 본다.
미국은 EU가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하 절차를 개시하거나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확대하면 품목 관세를 15%로 낮출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역시 특정 조건을 제시해 품목 관세 시행 시점을 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자동차가 대미 수출 1위 품목인 만큼 정부 차원의 신속한 추가 협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관세가 15%로 내정됐지만, 최종 서명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가 협상을 서둘러 15% 관세를 조속히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기업이 요구하는 사항을 하나하나 정밀하게 점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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