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이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하는 가운데 한국은 제도 논의에만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글로벌 금융시장이 '스테이블코인 전쟁'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국제 결제와 투자 시장에서 빠르게 확산하며 새로운 금융 패권을 공고히 하는 가운데 한국은 제도 논의에만 머물러 기회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코인마켓캡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기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약 2895억달러(약 403조원)다. 이 가운데 테더(USDT)가 1671억달러(약 232조), 서클의 USDC가 674억달러(약 93조원)로 두 종목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바이낸스 등 가상자산 거래소에서의 기본 결제 단위부터 디파이(DeFi) 금융상품·국제 송금 네트워크까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활용도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는 달러 패권이 전통 금융을 넘어 디지털 금융 질서에서도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서클은 규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시장 진입을 서둘렀고 테더는 담보 논란에도 편의성을 앞세워 점유율을 넓혔다. '실행이 먼저, 규제는 뒤따른다'는 전략이 시장 독주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대조적이다. 국회와 금융당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과 위험성을 두고 논의를 이어가고 있으나 결론은 더디다. 정책 논의는 실제 수요처를 묻는 데 그치며 실행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원화는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업계에선 국내 기업들의 준비 수준이 절대 낮지 않다고 본다. 은행권은 블록체인 기반 결제 시스템을 검토하고 일부 은행은 자체 발행 테스트까지 진행했다. 네이버페이와 업비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협업을 논의 중이다. 업계는 "제도적 방향만 제시되면 즉시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규제 불확실성이 대규모 투자와 상용화를 가로막고 있다.
"수요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전문가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잠재 수요는 충분하며 정책과 기업이 이를 창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를 보면 한국의 2024년 수출액은 6838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무역 결제 수단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활용된다면 환율 변동 리스크를 줄이고 원화의 국제적 입지를 넓힐 수 있다.


글로벌 디파이 시장 역시 기회다. 2025년 예치자산(TVL)은 약 1236억달러로 집계됐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해외 투자자에게 원화 기반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창구가 될 수 있다. 한류 콘텐츠 산업도 유망하다. 올해 1분기 콘텐츠 산업 수출액은 30억9782만 달러로 전년 대비 18.8% 증가했다. 글로벌 팬덤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다면 국내 플랫폼 기업에 새로운 수익 모델이 열릴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경쟁은 국가 간 대결이 아닌 민간 발행자 단위의 경쟁이다. 업계 관계자는 "테더와 서클처럼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하려면 한국도 은행, 핀테크, 블록체인 기업을 키워야 한다"며 "법과 제도 논의가 지연되면 기업들은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뛰지 못하는 관객으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이 가상자산 시장 규제 법안(MiCA)으로 발행 규칙을 명확히 한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국제 규제 환경과의 정합성을 고려한 제도 설계 없이는 국내 발행자의 글로벌 진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실험적 금융상품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차세대 금융 인프라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지금, 한국이 논의에만 머문다면 시장 참여 기회를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은 논쟁거리가 아니라 실행 과제"라며 "세계가 이미 달리고 있는 만큼 한국도 더 늦기 전에 실행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