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한 이재석 경사의 동료들이 해경 내부 '은폐 정황'을 폭로했다. 사진은 갯벌에 고립된 노인을 혼자 구하려다 숨진 고 이재석 경사의 영결식이 진행된 15일 오전 인천 서구 인천해양경찰서에서 고인의 동료들이 헌화 후 경례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갯벌에서 고립된 70대를 구하기 위해 구명조끼를 벗어줬다가 물살에 휩쓸려 사망한 해양경찰관 동료들이 해경 내부의 사건 은폐 정황을 폭로했다.

15일 뉴시스·뉴스1에 따르면 순직한 해양경찰관 이재석 경사와 당일 함께 근무한 동료들은 이날 인천 동구 청기와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혔다. 사건 당시 이 경사는 총 6명의 당직 인원과 근무 중이었다. 그러나 이 경사와 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인력은 오전 3시까지 '쉬라'는 팀장의 지시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들은 "영흥파출소장과 인천해양경찰서장이 '진실을 말하지 말라'며 고인을 영웅으로 포장하기 위해 사실 은폐를 지시했다"며 "지금까지 언론과 유가족에게 침묵했던 건 파출소장의 '함구 지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경사를 영웅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흠집이 나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며 "처음엔 고인을 위한 일이라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달된 자료가 사실과 달라 의혹이 커졌다. 결국 사실을 말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들은 '2인 1조 출동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파출소 및 출장소 운영 규칙' 37조 3항엔 '순찰자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2명 이상이 탑승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 경사는 사건 당일 홀로 현장에 출동했다.

이와 관련해 한 동료는 "해경은 편의점에 갈 때도 혼자 가지 않는다"며 "그런데 이 경사는 홀로 순찰차를 몰고 나갔다. 비상벨만 눌렀어도 모두가 대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료는 "상황 발생 당시 팀장으로부터 아무런 사항도 전달받지 못했다"며 "휴게 시간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이 경사가 위급한 상황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팀장은 우리를 깨우거나 이 경사와 함께 현장에 들어가야 했으나 일방적으로 다른 팀원들을 쉬게 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동료는 구조 전문 인력이었으며 이 경사는 평소 서무 업무를 맡아왔다.

이들은 민간 드론 업체의 '경찰관이 위험해 보인다'는 전화를 받고서야 이 경사의 상황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팀장은 상황실에 보고했다고 했으나 실제 보고는 30분 뒤에 이뤄졌다며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경찰관은 "파출소장이 '유가족이 불편하니 오지 말라'고 했고 또 다른 동료에게는 '재석이를 영웅으로 만들어야 하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또 다른 경장은 "사실만으로도 고인은 영웅이다. 은폐 지시는 고인이 아니라 지휘부 자신들의 책임을 감추려는 것"이라며 "모든 걸 걸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부팀장으로 근무한 경찰관은 "현장 상황은 팀장 지시와 달랐고 급박했다"며 "끝내 동료를 구하지 못해 유족께 죄송하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다만 해양경찰청은 "유족에게 CCTV, 무전 녹취록, 드론 영상 등 제공할 수 있는 자료는 모두 전달했다"며 "상황실 보고 없이 출동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인천해경서장과 파출소장이 진실을 은폐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이 경사는 지난 11일 인천 옹진군 꽃섬 갯벌에 고립된 70대 중국인 남성을 확인하고 홀로 출동했다. 당시 이 경사는 다리가 불편한 남성을 위해 착용하고 있던 구명조끼를 건네고 구조를 시도했다. 그러나 밀물에 휩쓸려 실종됐고 6시간 뒤 인근 해상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70대 중국인은 무사히 구조됐으며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