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관세 협상 후속 조치가 지연되는 가운데 관세 협상 조항인 3500억달러(한화 약 488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둘러싼 논란이 이재명 정부 두 번째 대정부질문에서 집중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사진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 국회(정기회) 제6차 본회의에서 대정부질문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김성아 기자
한미 관세 협상 핵심인 3500억달러(한화 약 488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둘러싼 논란이 이재명 정부 두 번째 대정부질문에서 집중적인 타깃이 됐다. 외환시장 불안과 재정 부담 우려가 제기되자 정부는 필요할 경우 국회의 동의를 받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한편 미국 측의 과도한 요구에는 응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또 외환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통화스와프' 카드까지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인천 중구·강화군·옹진군)이 "3500억달러 투자 건에 대해 국회의 비준이나 동의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묻자 "일률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면서도 "최종 협상이 진행돼 결론이 나는 시점에는 국회의 동의를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같은 입장을 표했다. 그는 "협상 결과의 형태가 무엇이든 국민이 부담을 져야 하는 내용이 있다면 당연히 국회에 설명해드리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이점에 대해 미국 측에도 얘기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7월 30일(현지시간) 한미 양국은 한국산 제품에 15% 상호관세율을 적용하고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00억달러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및 기타 에너지 제품 구매를 포함한 협상에 타결했다.

한미 관세 협상이 아직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데 대해선 정부는 미국 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제안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섣불리 합의하지 않고 협상을 이어가는 것이 국익을 지키는 길이라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김건 의원(국민의힘·비례)이 "대미 투자 3500억~4500억달러 규모를 협의했을 당시 문서화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미 측이 제시한 패키지는 우리가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라서 문서화하지 않고 계속 협상하는 게 국익을 지키는 것이었다"고 답했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이 "무책임하다"며 고성을 높였지만 조 장관은 "미 측 제안을 문서화했다면 우리 경제에 상당히 큰 주름살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갔을 것"이라며 "미 측이 제시한 안은 우리 정부로서는 수용하기 어렵고 현재는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춰 협상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사대규모 대미 투자가 외환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사진은 김민석 국무총리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 국회(정기회) 제6차 본회의에서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의 외교·통일·안보에 관한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대규모 대미 투자가 외환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163억달러 규모로 3500달러의 대미 투자가 이뤄진다면 외환 위기 가능성이 불거질 수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현금 등 직접 투자가 아닌 보증이나 대출 형태의 간접 투자를 선호하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협상 타결 직후 브리핑에서 "한미 조선협력 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유지보수(MRO)·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전반에 투자될 예정"이라며, "반도체·원전·이차전지·바이오 등 경쟁력 있는 분야에 대한 대미 투자펀드도 2000억달러 규모로 조성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투자하고 그 운용도 미국 측이 전담한다는 조건을 내건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미국 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그곳에 3500억달러를 현금으로 넣을 것을 요구하며 구체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조 장관은 무제한 통화스와프라는 안전장치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통화스와프는 자국 화폐를 상대국에 맡긴 뒤 미리 정해둔 환율로 상대국 통화를 빌려오는 방식이다. 소위 '국가 간 마이너스 통장'이라고도 불린다. 조 장관은 "협상 내용을 다 말하지 못하지만 한미 무제한 통화 스와프 요청이 우리가 제시한 여러 제안 중 하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