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금융감독 조직 개편을 앞두고 최근 만난 금융위원회의 2급 간부(국장급)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17년 만에 이뤄지는 금융감독 개편에 금융위와 금감은 1급 임원들이 전부 사표를 제출했고 허리급 직원인 사무관부터 과장급 직원들 사이에선 전문직 엑소더스(이탈)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 개편안은 금융감독 기능을 중심으로 한 금융감독위원회를 신설하는 게 주요 골자다. 과거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국과 금융감독위원회를 합쳐 금융위를 만들었던 2008년 이전 체제로 돌아간다. 금융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경제 부처에 맡겨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취지다.
금융위는 금융감독 기능을 금융감독원과 통합해 '금융감독위원회'로 재편한다. 금감위는 정부조직법에 따른 중앙행정기관 지위를 유지하며 금감원은 금감위 지휘를 받는 집행기구 역할을 맡는다. 금융소비자보호처는 금감원에서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으로 독립·격상한다.
해체 위기에 놓인 금융위는 상임위원 2명, 증권선물위 상임위원, 금융정보분석원장 등 4명이 사표를 제출했고 세종 이전 부담에 인재들의 이탈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위는 '서울청사'라는 장점에 지난해 5급 공채 합격자 중 수석과 차석이 모두 선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지만 세종 이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재경부로 이전하는 직원들은 '소수파'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금융위의 한 사무관은 "30·40세대 직원들이 세종과 서울을 출퇴근하면서 가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정책 효율성이 저하되고 책임 떠넘기기 가능성이 큰 감독개편에 조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금소원 분리와 공공기관 지정을 두고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 금감원 전체 직원(2172명) 중 47%가 전문인력이다. 공인회계사 468명, 변호사 232명, 보험계리사 47명 등으로 전문직 비율이 높다. 지난 23일 금감원은 부원장 3명과 부원장보 8명 등 현직 임원 11명이 사표를 냈고 일부 전문직 직원들이 다른 부처로 옮기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금감원 노조 관계자는 "내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정치권이 금감원·금소원 지방 이전을 선거 공약으로 제시하면 직원들이 세종시로 갈지 부산시로 갈지 알 수 없다"며 "조직개편 발표 후 변호사인 직원이 사직서를 던지는 등 내부 분위기가 심상찮다"고 말했다.
새로운 정부 정책은 늘 기대 보다 우려가 더 큰 게 현실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권한을 축소하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에 금융위, 금감원이 해체·분리되는 조직 개편으로 흐르는 건 아닌지 의문도 제기된다. 금감원을 해체 분리한 후 공공기관으로 만들면 이를 정부 아래 두는 신 관치금융시대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엘리트 집단으로 불리는 금융당국이 전문직들이 회피하는 부처로 전락하는 모습이다.
오늘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감원장이 나란히 이 대통령의 미국 유엔총회 순방에 동행하기 위해 출장길에 오른다. 한편 국내에선 금감원 직원 1100여명이 국회 앞에서 야간 집회를 열고 투쟁 수위를 높일 예정이다.
금융당국 안팎에선 조직 개편에 따른 전문 인력 이탈, 감독 비효율성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 조직개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인력 배치는 물론 감독기관 정보 공유와 공동검사, 감독 정책협의체 구성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