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더블린 외곽의 그레인지 캐슬. 화이자가 20억달러(한화 약 2조8000억원)를 투입해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오 캠퍼스를 짓겠다고 선언했을 때 아일랜드는 환호했다. 작은 섬나라에 세계 제약 공룡이 깃발을 꽂는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산업계의 지형을 바꿀 대형 사건이었다. 그러나 축제의 열기 뒤편에는 차가운 계산이 남아 있었다.
화이자가 내건 조건은 단순했지만 막막했다. "바이오의약품 제조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숙련 인력 2000명을 확보하라." 문제는 아일랜드 어디에도 그런 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가 됐다. 아일랜드 정부는 산업계와 학계, 그리고 투자개발청(IDA)을 중심으로 긴급히 대책을 모색했다. 결론은 명확했다. 세율 인하만으로는 글로벌 기업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 기업이 원하는 것은 인재, 그것도 곧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훈련된 인재였다. IDA는 5000만유로(약 830억원)를 투입해 국가 차원의 인재 양성 허브를 세우기로 했고, 마침내 2011년 문을 연 것이 바로 국립바이오공정 연구교육기관(NIBRT)이다.
━
공장을 그대로 옮긴 강의실…매년 5000명 '현장형 인재' 키운다━
2005년 화이자 투자 유치의 후폭풍으로 탄생한 NIBRT는 지금은 세계가 인정하는 바이오의약품 인력 훈련·연구 허브로 자리잡았다. 더블린에 위치한 이 기관은 8300㎡ 규모의 최첨단 GxP 시뮬레이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실제 생산 현장을 그대로 재현한 환경에서 교육을 제공한다.
설립부터 함께한 킬리언 오드리스콜 NIBRT 최고상업책임자(CCO)는 "NIBRT의 역할은 산업계의 요구를 충족하는 교육과 연구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NIBRT는 2011년 설립 당시부터 아일랜드 바이오의약품 제조업의 성장과 발전을 돕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고 소개했다.
NIBRT가 매년 배출하는 바이오 인재는 약 5000명에 달한다. 절반은 화이자·릴리·MSD 같은 글로벌 제약사 현직자이고 나머지는 수료증·학사·석사 과정 학생들이다. 오드리스콜 CCO는 "새로운 생산시설을 짓는 데는 수년이 걸리지만 인력을 양성하는 데는 12~18개월이면 충분하다"며 "이 차이가 아일랜드를 세계 3위 의약품 수출국으로 키운 숨은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NIBRT의 핵심은 현장 맞춤형 인재 양성이다. 커리큘럼은 원료의약품과 완제의약품 제조, 품질관리(QC), 세포·유전자 치료제(ATMP), 백신, 데이터 분석까지 아우른다. 학습 과정 설계에는 일라이 릴리(Eli Lilly) 등 주요 제약사들이 직접 참여해 실무 수요를 반영한다.
현재 교육을 받고 있는 대표 기업은 일라이 릴리다. 리머릭에 새 제조시설을 짓고 있는 이 회사는 모든 신입 직원을 NIBRT에 보내 기초 훈련을 맡겼다. '현장에 투입 가능한 인재'를 원하는 기업과 '실습 중심 교육'을 내세운 NIBRT의 철학이 맞아떨어진 사례다.
오드리스콜 CCO는 "아일랜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의약품 수출국이고 지난 10년간 약 150억달러(약 21조5000억원)의 신규 투자가 있었다"며 "현재 이 분야에는 약 4만명이 일하고 있으며 25개의 새로운 제조 현장이 있고 NIBRT는 그 모든 현장의 교육에 관여했다"고 말했다.
━
"1억 넘는 장비 즐비"…'최고의 파트너' 한국과도 협력 강화━
보안 게이트를 통과하자 병원처럼 새하얀 복도가 나타났고 복도 끝에 위치한 연구실은 최첨단 장비들로 가득했다. 잘 정돈된 실험대와 다양한 분석 기기들은 세포·유전자 치료제와 같은 차세대 바이오 의약품 개발을 향한 뜨거운 연구 열기를 짐작하게 했다. 한 장비 앞에서 걸음을 멈춘 오드리스콜 CCO는 "이 장비 한 대 가격이 1억원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억대를 호가하는 첨단 장비들이 연구실 곳곳에 즐비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한국도 NIBRT와 파트너십을 맺고 인력 육성에 나섰다. 연세대학교는 송도에 K-NIBRT 실습교육센터를 열었다. 오드리스콜 CCO는 "다양한 국가로부터 NIBRT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하자는 제안을 많이 받지만 저희는 파트너가 될 국가를 매우 신중하게 선택한다"며 "한국은 저희 최고의 글로벌 파트너 중 하나로 주기적으로 교류하며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NIBRT는 전 세계로 영역을 확대할 방침이다. 오드리스콜 CCO는 "NIBRT의 성공 모델은 단순히 인력을 교육하는 것을 넘어 정부, 산업, 학계가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라며 "한국과 같은 최고의 파트너들과 함께 이 성공 모델을 전 세계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다음 목표"라고 힘줘 말했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