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한국은 관세 협상을 위해 재계와 정부가 동시 대응하는 '투 트랙 외교'를 가동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들은 미국 출장길에 올라 투자 협력을 논의하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고위 관료들은 워싱턴 D.C.에서 미국 정부와 '부분 스와프' 같은 대안을 조율 중이다. 정부는 이달 말 경주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한미 무역협정이 최종 타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정관 장관은 16일(현지 시간) 오후 워싱턴 D.C. 상무부 청사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협상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는 김용범 정책실장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도 배석했다. 김 장관과 러트닉 장관은 양국 무역협상의 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7월 말, 한국에 책정된 25%의 상호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대신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나선다는 내용으로 관세 협상을 잠정 타결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미국이 3500억달러를 모두 현금으로 선불 투자할 것을 요구하며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의 발언은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높이고 있다. 베선트 장관은 15일(현지시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과의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양국의 이견은 해결될 수 있다고 확신하며 향후 10일 안에 뭔가 있을 것을 예상한다"고 구체적인 시한까지 언급했다.
이는 한국이 핵심 쟁점으로 요구한 투자 방식 다양화와 통화 스와프 제안에 대해 미국 측이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양국은 구체적인 쟁점에 대한 협의를 마무리 짓고 이달 말 개최되는 한미정상회담때 관세 협정의 최종 타결을 선언할 것을 목표로 조율에 나설 전망이다.
마스가는 지난 7월 양국이 큰 틀의 무역 협상을 타결할 때 한국 측이 미국에 제안한 한미 조선 협력 사업을 뜻하는 용어다. 다만 중국 상무부가 지난 14일 마스가 핵심 기업인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에 거래 금지 제재를 단행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중국의 노골적인 압박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한국의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관세 협상의 핵심 쟁점은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금 조달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까지도 이 금액을 한국이 선불 지급해야 하는 직접 투자라고 강경하게 주장하면서 협상 난이도는 더욱 높아졌다. 한국 정부는 이 거액이 일시에 현금 투자될 경우 외환 시장에 미칠 충격이 심대하다고 보고 있다.
정부 협상단은 투자금 조달 방식에 대한 현실적인 해법을 찾는데 집중하고 있다. 유력하게 거론되는 대안은 한국이 요구해온 무제한 한미 통화 스와프 대신, 미국과 싱가포르가 체결했던 600억달러 규모의 부분적·조건부 한도형 스와프다. 당초 한국 정부가 제시했던 무제한 스와프를 놓고 이견이 장기간 좁혀지지 않자 대안을 모색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화 스와프는 미리 정한 환율에 따라 서로 다른 두 통화를 일정 시점에 교환했다가 만기 시점에 다시 재교환하는 계약이다.
이 밖에도 한국 정부는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최대 10년에 걸쳐 분산 집행하는 방안을 미국 측에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미국의 현금 직접 투자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되 한국의 외환보유고 규모와 수출 중심 경제 구조를 고려해 매년 300억달러씩 단계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구상이다. 앞서 한국은행은 정부에 "미국에 투자할 수 있는 최대 한도는 연간 200억~300억달러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전액 달러 투자 대신 일부 원화 투자 방안도 함께 제안됐다. 구체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원화를 예치하면 미국 정부가 이를 기초 자산으로 삼아 대미 투자 프로젝트에 필요한 달러를 간접적으로 조달하도록 지원하는 방안이다. 이 방식은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없이도 외환보유액 타격을 최소화하며 미국의 투자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현실적인 우회로로 평가된다.
스타게이트는 트럼프 행정부(2기) 출범 이후 추진 중인 약 5000억달러(700조원) 규모의 초대형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다. 총수들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참여를 논의하며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공급 등 핵심 협력 방안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의 골프 회동 등을 통해 1500억달러 규모의 국내 기업 대미 투자 계획을 재확인, 관세 협상 타결을 위한 지원 사격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