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휴전 이후 북한이 우리 영토와 민간인을 직접 겨냥해 포격을 가한 것은 1970년대 이후 전례를 찾기 힘든 만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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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명 사상 남긴 1시간의 참상━
우리 군은 K9 자주포 3대를 동원해 80여발의 응사하는 등 침착하고 단호하게 대응해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아냈다. 이후 군 당국은 국지도발 최고 대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며 총력 대응 태세에 돌입했으나, 이미 연평도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후였다.
이날의 비극은 해병대원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각인된다. 당시 말년 휴가를 앞두고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던 고 서정우 하사(추서 계급). 그는 부대 쪽에서 치솟는 연기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발길을 돌렸다. '북한군의 도발'이라는 직감 하나로 자진 복귀하던 그는, 야속하게도 적의 포탄 파편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당시 입대한 지 두 달 된 고 문광욱 일병(추서 계급) 역시 포병 사격 훈련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유명을 달리했다.
민간인 2명의 사망과 수십 명의 부상자 그리고 파괴된 가옥들은 '국지도발'이라는 군사용어로 덮기엔 너무나 처참한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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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또 북한은 NLL을 무력화하고 새로운 해상경계선을 설정하려는 의도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북한은 이런 목적으로 ▲1999년 6월15일 제1연평해전 ▲2002년 6월29일 제2연평해전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피격 등 서해에 선제공격을 감행해왔다. 결국 연평도를 집어삼킨 화마는 북한 체제 결속을 위한 '피의 제물'이었던 셈이다.
포화가 멎은 지 15년이 흘렀지만 서해 5도를 감도는 긴장감은 여전하다. 매년 11월이 되면 생존 장병과 유가족들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싸우며 그날의 공포를 다시 마주한다. 종전이 아닌 휴전, 전투는 멈췄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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