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광이 단순히 보는 관광에서 벗어나 '머무는 체험'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있는 '발원의 북'을 울리는 외국인 부부의 모습. /사진=김다솜 기자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은 평일 이른 오후부터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북소리가 울리자 자연스레 발걸음을 멈춘 이들은 사찰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사찰안에서는 수십명의 관광객이 사찰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으며 한국적 분위기를 즐겼다. 프랑스에서 온 한 중년 부부는 "한국의 멋을 느껴보고 싶어서 왔다"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신기하다"고 말했다.
과거 도심 사찰이 일정 사이 잠시 들르는 장소였다면 최근 흐름은 완전히 달라졌다. 단순히 보는 관광에서 벗어나 명상·사찰음식·108배·차담 등이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분위기를 전문가들은 일시적 유행이 아닌 한국 관광의 구조적 변화로 진단하고 있다.
명상·사찰음식·108배 등 체험형 콘텐츠 급증
사진은 경북 경주 골굴사에서 감은사지 선무도 체험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사진 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 따르면 외국인의 템플스테이·템플라이프 참여는 2022년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참가자 국적은 미국·프랑스·독일 등 미주·유럽을 넘어 중국·베트남 등 아시아까지 폭넓다. 연령도 20~30대가 43%로 가장 많지만 40·50대, 10대, 60대 이상 등 전 세대로 확장하는 추세다.
사진은 양양 낙선사에서 소리 명상 체험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사진 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불교문화사업단 관계자는 "지하철과 버스로 쉽게 올 수 있는 접근성과 영어 안내 확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히 보는 관광이 아니라 자기 회복·휴식·정신적 안정을 원하는 외국인들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체험은 명상이다. 자비수관, 걷기 명상, 좌선이 높은 만족도를 보였고 108배, 염주 만들기, 예불, 스님과의 차담 등이 뒤를 이었다.
사진은 서울 금선사에서 발우공양 체험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사진 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특히 사찰음식 체험이 두드러지게 늘었다. 채식·지속 가능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데다 K푸드 열풍까지 더해져 종교 체험을 넘어 문화·웰니스 콘텐츠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전체 참여자의 82.2%가 스트레스 감소와 심리 안정 효과를 체감했다고 답해 웰니스 프로그램으로서의 가치도 확인됐다.
서울 서대문구 '홍대선원'에서도 외국인의 명상·요가 참여가 꾸준히 증가했다. 선원 관계자는 "봄·가을이면 유럽과 미국에서 온 방문객이 많다. 이들은 명상이나 요가 등 웰니스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홍대선원 법여스님은 "다양한 문화권의 방문객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매력으로 작용하는 듯하다"며 "영어로 진행되는 매주 수요일 저녁 1시간의 좌선 프로그램이 가장 인기"라고 소개했다.
전문가들 "과밀·상업화 우려… 품질관리 필요"
사진은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 단체 관광객의 모습. /사진=김다솜 기자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한국 관광의 체질 전환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고계성 경남대 여행항공관광학과 교수는 "서울로 외국인이 집중되는 구조에서 도심 사찰은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한국적 콘텐츠가 된다. 소비형 여행에서 실속형·체험형으로 넘어가는 흐름이 이를 키웠다"며 "외국인에게 사찰은 종교시설이기보다 한국 문화를 압축해 보여주는 상징 공간"이라고 분석했다.
임형택 선문대 관광호텔경영학과 교수도 "도심 사찰은 대중교통 접근성이 뛰어나 도시 관광 동선에 자연스럽게 편입된다. 체험형 관광이 사찰 문화유산의 가치를 새롭게 비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명상과 차담은 최근 주목받는 심리 치유 프로그램과 맞닿아 있어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사진은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사진=김다솜 기자
템플스테이는 단순한 종교 체험을 넘어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명상과 108배, 사찰음식, 염주 만들기 등은 종교색보다 체험 요소가 앞선다. 이훈 한양대 관광연구소장은 "수행방식 자체가 심신 수련을 목표로 해 종교 콘텐츠라기보다 문화상품에 가깝다"며 "브랜드화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반복 방문을 유도할 연계 프로그램과 특별 이벤트 개발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높은 관심만큼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표적 문제는 과밀과 영역 침범이다. 고 교수는 "사찰 본래의 수행 공간이 과밀한 관광객으로 인해 훼손될 수 있다. 전통을 존중하는 선에서 관광과 수행의 동선을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종교 의례가 단순 퍼포먼스로 소비될 위험성도 제기된다. 구철모 경희대 글로벌·관광학과 교수는 "도심 사찰이 돈벌이에 치중하면 한국 문화가 상업화될 수 있다"며 "문화체육관광부 등 공공기관이 프로그램 품질과 가격 투명성, 운영 표준을 점검해 인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임 교수도 "종교적 의례가 관광 상품화되며 본래 의미를 잃지 않도록 전문 해설과 운영 가이드라인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