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관광객의 K뷰티 소비가 구경, 구매에서 의료·의약품 소비로 확장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사진은 지난 26일 서울 중구의 한 약국에서 쇼핑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사진=김다솜 기자
지난달 말 오후 서울 명동. 5분을 채 걷지 않아도 약국 간판이 줄지어 눈에 띈다. 간판은 물론 내부 안내판은 한글보다 영어·일본어·중국어가 더 눈에 띄었다. 계산대 앞은 대부분 외국인 여성 손님들이 차지했고 직원들 역시 중국어·일본어로 응대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이제는 흔한 명동의 이 같은 풍경은 단기적 트렌드가 아니다. 외국인 관광객의 K뷰티 소비는 구경에서 구매로 이어진다. 의료·의약품 소비로 확장하는 흐름도 뚜렷해지는 추세다. K컬처의 영향 속에서 한국의 뷰티·의료·약국 산업이 하나의 생태계처럼 연결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진은 지난 26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안에 있는 약국에서 외국인에게 인기 있는 제품이 진열된 모습. /사진=김다솜 기자
영·중·일 표기, 외국인 관광객으로 가득 찬 약국
약국에는 PDRN 크림·재생 연고·미백 패치·고함량 영양제 등이 집중적으로 진열돼 있다. 관광객은 휴대전화 메모장에 저장해온 '약국 쇼핑 리스트'를 꺼내 하나씩 확인하며 고민했다. 일부 약국은 유명 제품을 '약사 추천 세트'로 묶어 할인 판매하기도 한다. 또 외국인 고객 유치를 위해 택스리펀 가맹점(면세판매점)에 가입하거나 무인 환전기를 도입한 약국도 드물지 않다.
사진은 지난 26일 서울 중구의 한 약국에서 '약사 추천 세트'를 만드는 직원들의 모습. /사진=김다솜 기자
서울 중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일본·중국 관광객이 주로 많았는데 요즘은 동남아·미주·중동 등 다양한 국가에서 손님이 온다"고 말했다. 오직 뷰티 제품을 사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일본인 여성 관광객 무리는 "틱톡, 인스타에서 PDRN 크림, 재생 연고 효과가 엄청 좋다더라. 친구들이 부탁한 것까지 사 간다"고 전했다.
"단순 유행 아닌 구조적 변화"
사진은 지난 26일 서울 중구의 한 약국에서 쇼핑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사진=김다솜 기자
전문가들은 이 흐름을 '체험 관광의 확장판'이라고 봤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OTT·SNS 확산으로 K뷰티와 K매디슨의 파급효과가 커졌다. 다양한 융합 체험 소비가 늘고 있다"며 "좋은 흐름이지만 결국 어떻게 더 잘하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변정우 경희대 Hospitality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외국인의 약국 방문을 "한국 의료진의 기술을 '라이프스타일 체험'으로 받아들이는 흐름"으로 해석했다. 그는 "이들이 SNS로 경험을 공유하면서 다시 새로운 관광객이 유입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며 "시술·관리 후 긍정적 경험이 관련 상품 소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선순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지난 26일 서울 중구의 한 약국에서 쇼핑 후 세금을 환급 받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사진=김다솜 기자
체험형 소비가 급증한 만큼 우려도 적지 않다. 김 교수는 "글로벌 소비자 보호 기준에 맞는 피해보상·약관·안전장치 정비가 시급하다"며 "특히 의약품과 미용이 결합한 지점은 국가별 규제가 달라 더 민감하다. 작은 실수 하나가 K컬처 전체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변 교수도 "체험 시설·상점들에 대한 사전 교육과 계도가 철저해야 한다. 의료 관광객 경험을 꾸준히 분석해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확장 방향에 대해 두 전문가는 모두 '예측의 어려움'을 전제하면서도 공통으로 트렌드 분석과 기준 정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AI와 연계된 개인 맞춤형 체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 제품의 가격 대비 품질 우위라는 강점을 살려야 한다"고 했다. 변 교수는 "시장을 주도하려면 정부·지자체가 변화 흐름을 선제적으로 읽고 대응해야 한다"며 "K뷰티 페스티벌처럼 글로벌 이벤트를 통해 시장을 이끌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