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3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상의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임한별 기자
미국 정부가 전략산업 공급망 자립화를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하면서 민간 기업에 대한 직접 지분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고려아연에 대한 투자도 이런 정책 기조에 따른 결정으로 풀이된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미국이 우방국 기업의 자국 진출을 지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분 투자까지 병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과 일본·유럽 등 경제 우방국 기업을 활용해 전방위적인 공급망을 구축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고려아연을 최적의 파트너로 판단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미국 정부는 최근 6개월간 100억 달러(약 14조7000억원) 이상을 투입해 US스틸·인텔·MP머터리얼즈·트릴로지메탈스·웨스팅하우스 등 광물·IT·에너지 기업의 지분이나 워런트를 확보했다. 여기에 더해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추가적인 지분 투자를 지속적으로 시사해왔다.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관련 기업들의 공급망 구축을 신속히 완성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미국은 특히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에 공을 들여왔다. 주요 핵심광물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해온 만큼 자원 무기화에 따른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의 아연 수입 의존도는 73%에 달하고 안티모니와 비스무스·갈륨은 각각 85%·89%·100%로 자립도가 취약하다.

이번 고려아연 투자는 미국의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 전략에서 고려아연이 효율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고려아연은 글로벌 최고 수준의 제련 기술과 생산 역량·환경 관리 체계를 갖춘 기업으로 경제 우방국인 한국 기업이라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복합 제련소 모델을 바탕으로 한 기술 경쟁력도 주목받는다.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가 지정한 핵심광물 60종 가운데 12종(안티모니, 비스무스, 코발트, 구리, 인듐, 연, 니켈, 은, 텔루륨, 아연)을 생산하고 있다. 2028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설비 투자를 진행 중인 갈륨과 게르마늄을 포함하면 생산 광물은 14종으로 늘어난다. 미국 정부가 고려아연 온산 제련소 모델을 참고한 복합 제련소 건설을 지지하는 배경이다.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의 투자를 계기로 사업성이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내 아연과 구리, 연 등 비철금속과 핵심광물 수요는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노후 제련소 폐쇄와 환경 규제로 공급은 점차 줄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번 제련소 건설을 통해 미국 내 핵심광물 수요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시장을 확대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이번 투자를 계기로 한·미 간 경제적 파트너십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의 속에 투자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가 단순한 민간 투자 사례를 넘어 한·미 경제안보 협력의 대표적 사례가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