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부장판사)는 영풍·MBK 측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금지 가처분 신청 건을 심리 중이다. 재판부는 지난 19일 열린 심문기일에서 양측의 입장을 확인한 뒤 미국 정부가 실제로 제련소 지분 참여를 요구했는지를 증명할 구체적인 석명자료를 요구했다. 이에 고려아연 측은 관련 증빙 자료를 준비해 지난 21일 재판부에 제출하며 배수진을 쳤다.
이번 가처분 신청의 핵심 쟁점은 고려아연이 추진 중인 제3자 배정 유상증자다. 고려아연은 미국 내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해 미국 국방부 등과 합작법인(JV)을 설립하고 해당 JV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약 2조8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해 고려아연 지분 약 10.59%를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유상증자가 실행되면 양측 지분 지형도가 바뀐다. 유상증자가 성공하면 전체 발행 주식이 늘어나면서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영풍 측 지분은 약 44%에서 40%로 낮아지는 반면 최 회장 측은 우군인 JV의 지분을 합쳐 39%까지 지배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사실상 최 회장의 경영권을 수호하는 '캐스팅보트'가 확보된다. 이에 영풍·MBK 측은 "경영권 분쟁 와중에 특정인에게 유리한 지분을 제공하는 명백한 편법"이라며 가처분을 신청했고 고려아연은 "미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안보 차원의 전략적 결정"이라며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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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부 "공급망 강화 핵심" 지원사격… 사법부 판단 영향 미칠까━
2020년 한진그룹 분쟁 당시 법원이 조원태 회장에게 유리한 제3자 산업은행의 유상증자를 허용한 것도 같은 이유다. 항공 산업 구조조정이라는 국가적 과제가 경영권 방어 목적보다 우선한다고 판단했다. 고려아연 역시 이번 제련소 사업이 한·미 양국의 핵심 광물 공급망 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을 부각하며 제2의 한진칼 판례를 기대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적법성 판단에서 법원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경영상 필요성인데 이번 사안은 단순한 지분 방어 차원을 넘어 한·미 간 핵심 광물 공급망 구축이라는 공공성이 결합돼 있다"며 "최근 법원은 기업의 경영 판단과 자율성을 비교적 폭넓게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미국과 한국 정부 모두 이번 제련소 건설 사업의 당위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 행정부 인사들은 이번 사업이 동맹국인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자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는 핵심 고리가 될 것이라며 연일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 장관이 브리핑을 통해 "희토류 등 글로벌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주무 부처 수장으로서 긍정적인 입장을 공식화했다.
사법부는 행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성을 지니고 있어 정부의 지원 사격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국내 관계 부처가 강조하는 '공급망 안보'라는 대의명분을 사법부가 정면으로 가로막기에는 상당한 부담이 따를 것이란 관측이다.
이번 가처분 결정은 향후 경영권 분쟁의 흐름을 결정지을 최대 분수령이다. 법원이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줄 경우(기각) 미국 제련소 사업은 탄력을 얻는 동시에 최 회장의 경영권은 한층 공고해진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 회장 측 11명, 영풍 측 4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번 유상증자 양측의 지분율이 대등해지면 영풍 측의 이사회 추가 진입 시도를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영풍·MBK 연합이 즉각 항고하며 법적 공방을 이어갈 가능성이 커 분쟁의 불씨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가처분이 인용될 경우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는 궤도 이탈이 불가피하다. 해당 사업은 합작법인을 통한 미국측 지분 참여를 전제로 미 상무부 보조금 등 세부 자금 계획이 설계돼 있다. 유상증자가 무산되면 프로젝트의 근간이 흔들리며 사업 주체와 투자 구조 등 모든 사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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