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일 서울 용산구 소월로 그랜드 하얏트에서 열린 고려아연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 /사진=머니S
지난 16일 미국 정부가 고려아연과 손잡고 테네시주 클락스빌 제련소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그간 미국이 추진해 온 핵심 광물 관련 프로젝트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핵심 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해 주요 기업에 투자하면서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을 활용해 왔다. 클락스빌 제련소 프로젝트에서도 제3자 유상증자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을 확보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10월 에너지부(DOE)를 통해 리튬 아메리카스에 대한 투자를 발표했다. 당시 DOE는 1차 대출을 추진하며 리튬 아메리카스와 리튬 아메리카스-GM 간 합작회사(JV)의 지분 각각 5%에 해당하는 보통주를 주당 1센트에 인수할 수 있는 워런트를 설정했다. 동시에 대출 준비금으로 1억2000만 달러를 추가 적립하고 GM과의 오프테이크(장기구매) 계약을 수정하는 등 판로 확대를 위한 옵션도 포함시켰다.

미국 국방부(DOD)와 트릴로지 메탈스 간 계약도 유사한 구조다. 미국 연방정부는 트릴로지 메탈스 주식 약 820만주를 주당 2.17달러에 매입했다. 각 단위는 보통주 1주와 10년 만기 워런트 4분의 3로 구성됐으며 DOD는 트릴로지 메탈스가 알래스카에서 추진 중인 엠블러 접근 프로젝트(엠블러 도로) 완공 이후 주당 1센트에 보통주 1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미국 정부는 이 같은 방식을 고려아연에도 적용했다. 미국 정부는 고려아연의 현지 제련소 운영법인 지분을 주당 1센트(약 14원)에 최대 14.5%까지 매입할 수 있는 워런트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대부분의 조건은 다른 핵심 광물 기업들과 체결한 계약과 유사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시장에서는 미국 정부가 설정하는 워런트 가격을 상징적인 수준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통상 미국 정부는 투자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저리 대출과 인허가 패스트트랙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이후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기업 가치가 상승하고 이때 워런트를 행사해 투자에 대한 대가를 회수하는 구조다. 사업 성공 가능성에 베팅하고 성과에 따라 보상을 받는 방식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 정부는 장기 협력을 전제로 이 같은 구조를 활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업 초기 워런트를 행사할 경우 주주 권리는 확보되지만 인허가 지연 등 리스크도 함께 부담해야 한다. 리스크를 감안해 매수 권리를 보유한 뒤 사업이 안정 단계에 들어섰을 때 이를 행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이다. 이로 인해 미국 정부는 워런트 설정 기업과 프로젝트 성공 시점까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지원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같은 점을 감안하면 고려아연과 미 정부와의 계약은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정부는 주당 1센트에 고려아연 미국 제련소 운영법인 지분 14.5%를 인수할 권리를 갖는 동시에 추가로 20%에 대한 워런트도 확보했다. 이는 운영법인의 기업가치가 23조원을 초과할 경우 해당 가치에 따른 금액을 지급하고 지분을 인수하는 조건이다. 현재 약 11조원이 투자되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 정부가 최소 두 배 이상의 가치 상승을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 정부의 고려아연 투자는 전략 광물 공급망 구상인 '팍스 실리카(Pax Silica)'의 일환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팍스 실리카는 미국이 한국 일본 호주 영국 등 8개 동맹국과 협력해 반도체와 핵심 광물 등 미래 산업 공급망을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다자 협력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