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직후 해운경기가 사상 최대 하락 폭을 기록하더니 2010년 비정상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반짝 상승세였을 뿐이다. 해운산업은 여전히 회복기로 전환하지 못하고 다시 불황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해운은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1958년 세계적 불황, 1973년 석유파동, 1979년 2차 석유파동 등을 두루 거쳤다. 2008년 하반기 금융위기까지 평균 7년 순환주기로 등락을 거듭했다. 이 같은 사이클이 반복돼 온 해운산업이 7년 주기에 접어들고 있음에도 회복기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과잉선복’ 해운산업 장기불황 원흉


결론부터 말하면 선박 공급과잉이 해운 장기불황의 원흉으로 눌러앉아 있어서다. 2006년부터 시작된 중국 특수로 해상물동량이 급증하자 글로벌 해운선사들은 경쟁적으로 선박을 발주하기 시작했다. 해운시황을 대표하는 발틱운임지수(BDI: Baltic Dry Index)는 2007년 10월 평년 수준의 약 5배까지 치솟으며 투기적 선박 발주를 부채질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선박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다. 대량으로 발주됐던 선박들이 선대에 투입되면서 해운시황은 급격한 하락세를 맞이했다. 2010년 상반기 일시적 수요 반등과 투기적 요소가 맞물렸다. 다시 한차례 선박 발주 랠리가 연출되면서 선복 과잉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시황 회복 시기는 그만큼 지연되고 말았다.

이후 과잉선복으로 인한 저운임 기조가 장기간 지속됐다. 해운업계에는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성 확보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각 해운사들은 선박 운영비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연료비를 절감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지속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유가 고공행진이 지속되자 해운사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이때 국내 조선사들이 30% 이상 연료를 절감할 수 있는 에코선박을 시장에 내놓으며 연비 경쟁에 불씨를 당겼다. 자금 여력이 있는 선사들은 연비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친환경 선박을 경쟁적으로 발주했다. 이 같은 친환경 선박 발주의 증가는 과잉선복 부담을 가중시켰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친환경 선박 이슈를 등에 업고 다량의 초대형 컨테이너선박이 발주됐다. 케이프사이즈 벌크선과 원유운반선(VLCC)의 경우 그동안의 발주 자제로 수급 균형이 가시화됐다. 친환경 선박 도입으로 시장을 선점하려던 선사들의 발주량은 증가했다. 하지만 시장에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다이내믹하게’ 전개될 해운시황

에코선박의 등장으로 과잉선복에 대한 부담이 지속되고 있다. 올해 하반기 이후 출범될 'Top3'(Maersk Line, MSC, CMA-CGM) 해운사들의 연맹 ‘P3 네트워크’는 정기선사(컨테이너선사)들의 영업 환경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경영난 타개를 위한 선사들의 체질 개선 ▲글로벌 컨테이너 얼라이언스 간의 선대 효율화 작업 ▲비수기 일괄운임 인상 등으로 인해 운임 하락폭은 제한될 것으로 판단된다.

P3 체제 출범에 대항하기 위한 글로벌 얼라이언스의 합종연횡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P3 네트워크에 대한 화주들의 견제가 예상되면서 올해 정기선 시황은 그 어느 때보다 다이내믹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부정기선 부문은 세계 경기 회복으로 수요가 꾸준히 회복되고 있다. 선박 인도량 감소로 그동안 운임 상승을 제한하던 선박 과잉 공급이 점차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케이프사이즈 벌크선, VLCC 선박 발주 증가세가 올해에도 계속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잉선복 현상이 장기화돼 향후 운임 상승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향후 부정기선 시황의 회복 여부는 선주들이 선박 발주를 얼마나 자제하느냐에 달려있다.


◆속단 이른 안갯 속 조선시황

해운산업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조선산업은 그동안 동반 부진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에코십 발주 훈풍을 타고 선박 발주량이 증가했다. 124포인트까지 하락했던 클락슨 신조선가 지수가 132포인트까지 상승하며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클라슨 신조선가 지수는 새로 만드는 배의 선가를 지수화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조선시황이 본격적인 회복세에 진입했다고 판단하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조선산업 불황에 대한 우려가 절정에 다다랐던 2010년 초 클락슨 신조지수가 137포인트였던 점을 상기할 때 현재 수주 단가는 여전히 낮다. 조선산업이 완전히 회복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공급과잉 이슈가 해소되기 전까지는 시황 회복에 분명한 한계가 존재할 것으로 진단된다.

장기간에 걸친 저가 수주로 조선업계의 실적 전망 또한 그리 밝지 않다. 지난해 상반기 삼성중공업은 다량의 드릴십 건조 효과로 9.5%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동종업계 최고 수익성 달성이다. 반면 같은 기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영업이익률은 각각 3.9%, 2.9% 수준에 그쳐 수익성이 점차 하락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저가 수주 선박이 매출에 반영된 결과다. 각 조선사들은 이 같은 실적 하락 추세를 막기 위해 친환경 선박 등 프리미엄 선박 수주로 선가 상승을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에코 선박 발주는 선박 공급 과잉과 저운임 기조를 장기화시켜 결국 해운사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에코선박 발주, 공급과잉, 저운임 기조 지속, 선박 발주 감소의 악순환은 일정기간 반복될 수밖에 없다. 친환경 선박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야기한 장기불황의 딜레마는 향후 선박관련 시장의 새로운 고민거리가 될 소지가 높다. 그만큼 국내 조선·해운업체들의 슬기로운 대응이 요구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