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물론 국내증시도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과거 금융위기나 유럽 재정위기 때와 달리 충격은 빠르게 회복되는 분위기다. 아직 실물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확정 이후 국내증시 상황을 짚어보고 최악과 최상의 시나리오를 구성해봤다.
◆브렉시트 이전으로 돌아간 주가
한국시간으로 지난달 24일 오전 6시 영국의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가 종료됐다. 여론조사는 박빙을 보였지만 시장에서는 브렉시트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코스피가 이날 2000선 위에서 장을 시작한 것이 그 방증이다.
하지만 개표가 진행되면서 점차 브렉시트 현실화 우려가 커졌고 국내증시도 요동쳤다. 이날 하루 동안 코스피는 108.8포인트 움직였고 결국 3%대의 하락세로 장을 마감했다. 수급적 측면에서는 외국인이 1498억원을, 기관계도 금융투자에서 2105억원의 순매도가 발생했다.
코스닥시장도 장중 거래가 일시정지되는 사이드카가 발동하는 등 급락세가 연출됐다. 사이드카는 코스닥150지수 선물이 6% 이상, 현물이 3% 이상 상승 또는 하락한 채로 1분 이상 지속될 때 5분간 프로그램매매 호가를 정지시키는 장치다. 선물시장의 영향이 과도하게 현물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다.
시장이 불안증세를 보이자 대표적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는 장중 전 거래일보다 46.78% 폭등한 26.67까지 치솟았다. 당초 시장이 브렉시트를 예견하지 못했던 터라 충격이 더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시장은 빠르게 회복됐다. 지난달 27일부터 3거래일 만에 코스피는 55포인트, 3%가량 오르며 브렉시트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기관투자자가 꾸준히 매수세를 늘렸고 대규모 이탈이 우려됐던 외국인도 지난달 29일부터 순매수세로 돌아선 덕분이다.
신은영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브렉시트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에 미국, 유럽, 아시아증시가 강세를 보였다”며 “국내외 경기부양책 발표 등으로 불안감이 완화되며 국내증시도 반등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한국정부는 지난달 28일 대내외 불확실성의 선제적 대응을 위해 10조원 규모의 세출 추가경정예산 계획을 발표했다.
◆워스트 시나리오: EU 분열… 남유럽 재정위기
국내증시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브렉시트 악재가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영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줄줄이 강등함에 따라 국내증시의 영국계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 보유 시가총액은 434조원으로 전체의 34.6%를 차지한다. 이 중 영국계 자금은 36조4000억원으로, 172조8000억원을 보유한 미국계의 뒤를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곧바로 영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이어 바클레이즈, HSBC, TSB은행 등 영국 주요 은행 신용등급도 ‘부정적’으로 하향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에는 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영국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두 단계 낮췄고 피치는 ‘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시켰다.
아울러 영국이 촉발한 유럽연합 탈퇴 분위기가 다른 유럽국가로 번져 유로존 자체가 흔들릴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은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네덜란드, 폴란드, 체코 등은 반 EU 성향이 강한 국가로 알려졌다. 이 중 네덜란드는 국내 상장사 주식보유순위 6위에 올라있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7~8월에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국채 만기가 집중됐고 이탈리아 국민투표, 미국 대선 등 정치적 이슈가 남아있다”며 “유럽의 정치적 위험과 은행 수익성 악화 가능성이 공존하는 국면”이라고 분석했다.
홍춘욱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영국에 이어 다른 유럽국가의 EU 이탈 움직임이 나타난다면 남유럽 재정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며 “이 경우 코스피는 글로벌 금융위기 최저점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적용한 1700선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스트 시나리오: EU국가 결집… 영국 ‘경제적’ 잔류
국내증시에 가장 좋은 상황은 영국이 EU에 잔류하는 것이다. 실제 영국 내에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세력은 재투표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영국의 EU 잔류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제 기대해볼 것은 영국이 최대한 EU를 흔들지 않고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영국은 EU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라 앞으로 최소 2년간 EU와 협상에 돌입한다. 이때 영국이 정치적으로 EU를 탈퇴하되 경제적 실익은 취하는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되면 다른 유럽국가들에게도 탈퇴의 명분을 제공하게 된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영국이 정치적으로만 EU를 탈퇴하고 경제적으로는 지금까지와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실제 영국을 제외한 27개 EU 정상들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브렉시트 이후 이뤄진 첫 비공식 회동에서 “영국이 EU 단일시장 접근권을 얻기 위해서는 물품, 노동자, 자본, 서비스 이동의 자유를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고히 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대응이 EU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유럽의 상황이 긍정적으로 흘러간다면 하반기 국내증시는 무난하게 2000선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증시 기초체력(펀더멘털)은 튼튼한 편이고 환율시장도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브렉시트 이후 달러와 엔화 강세가 나타났고 이는 수출주, 특히 일본기업과 경쟁하는 업종에 호재로 작용한다.
배성영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정책 공조가 나타나고 브렉시트가 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늘어난다”며 “실적전망이 계속 상향되는 삼성전자와 정부의 추경, 환율효과 등은 증시에 긍정적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