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타이어 공장 내 설치된 노조 현수막. /사진=최윤신 기자


굴지의 타이어 회사인 금호타이어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린다. 중국 더블스타의 유상증자를 받으려는 금호타이어 채권금융기관협의회(채권단)은 3월30일까지 노동조합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노조의 동의 없이는 투자유치가 불가능한 상황. 노조는 “법정관리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중국기업에 먹힐 수는 없다”고 맞선다.
◆1년6개월 끌어온 매각, 달라진 사정

금호타이어 매각이 추진된 지 1년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노조와 채권단은 첫 매각 시도에서 더블스타가 우선매수권자로 선정된 지난해 1월부터 1년 넘게 마찰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시간은 노조의 편이 아니었다. 매각이 지체되는 사이 주인 없는 회사 금호타이어의 경영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2016년 첫 매각 시도 당시 1조원으로 예상됐던 채권단 지분의 가치는 이제 그 누구도 탐내지 않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그 사이에 정권이 바뀌었고 채권단 대표격인 산업은행의 수장도 바뀌었다. 그렇지만 금호타이어를 품을 주인의 후보로 거론되는 건 여전히 더블스타다. 그마저도 처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을 당시에 비하면 채권단에게 훨씬 나빠진 조건이다.

더블스타는 지난해 채권단이 보유한 금호타이어 지분 6636만8844주(지분율 약 42%)를 9550억원에 인수하려 했지만 금호타이어의 실적악화를 이유로 인수를 철회했다. 현 이동걸 회장 취임 이후 금호타이어 TF(태스크포스)를 꾸린 채권단은 더블스타와 만나 6463억원의 유상증자 방식으로 회사 경영권을 넘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경우 더블스타는 45%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가 되고 채권단의 지분은 23%로 쪼그라든다.


차이융썬 더블스타 회장. /사진=임한별 기자


전자와 후자의 방식은 더블스타에 경영권을 넘긴다는 것에선 동일하지만 그 맥락에서 차이가 있다. 전자가 채권단의 매각 차익 실현에 방점이 찍혀있다면, 후자는 회사 정상화가 목적일 수밖에 없다. 채권단은 인수합병(M&A)시장에서 통용되는 ‘경영권 프리미엄’ 자체를 포기했다. 채권단은 더블스타의 유상증자가 이뤄질 경우 시설투자를 위한 2000억원을 더 지원한다는 방침도 세워뒀다.
사실상 산업은행을 제외한 다른 채권은행들은 손을 놓은 상황이다. 채권은행 관계자는 “2000억원의 추가지원은 채권단 전체가 아니라 산은이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하루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다 보니 일부 채권은행에선 “차라리 빨리 청산하는 게 낫지 않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물론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온데는 채권단의 책임이 크다. 처음 매각추진 당시 중국법인 부실 등 회사의 상황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지 못했고 상표권 문제를 명확히 처리하지 못한 게 매각 실패의 단초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새 수장을 앞세운 채권단은 이제 솔직해졌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3월19일 광주를 찾아 노조에 “더블스타가 아니면 누구도 금호타이어를 못 살린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전면에 나서지 않던 더블스타도 막바지 상황이 되자 직접 나서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차이융썬 더블스타 회장은 지난 3월22일 산은 본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것이지만 무한정 기다리지는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간담회에 함께 배석한 이대현 산은 부행장은 3월30일로 정해진 마지노선이 미뤄질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다른 이해당사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유동성 때문에 시한을 넘기긴 어렵다”고 말했다.

◆정치논리에 매달리는 노조

산은이 금호타이어 문제에 국책은행의 입장으로 접근한다는 건 노조와 한배를 탄 것을 의미한다. 매각차익이 아닌 일자리의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도 답은 더블스타라는 결론이다. 하지만 노조는 바뀐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블스타 반대’ 만을 외치고 있다.

차이 회장은 이날 노조를 만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언제든 만날 수 있고 칭따오에 초청해 더블스타 공장을 견학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며 호의적인 대답을 내놨다. 하지만 노조가 대화 자체를 꺼리는 모양새다. 노조 관계자는 “더블스타의 재무관련 자료와 홍콩법인 정상화 계획 및 그 타당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설비투자 계획 등을 요구했다”며 “이를 검토한 뒤 면담을 요청할 것”이라고 뜸을 들였다.

분명한 것은 노조에게도 법정관리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점이다. 앞서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은 끝내 파산해 물류와 고용대란을 남겼다. 법정관리의 일종인 프리패키지드 플랜(P플랜)에 들어간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종업원수를 절반으로 줄였고 1인당 평균 급여는 2012년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다.

노조 역시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노조가 ‘법정관리 불사’라는 구호를 내거는 것은 법정관리가 채권단의 선택지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여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자를 만난 금호타이어 노조 관계자는 “노조 집행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회사를 법정관리로 보낼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찬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노조가 매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정치 논리에 의해 금호타이어를 연명시킬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하다는 것.

이 관계자는 “현 집행부는 금호타이어의 운명을 정치적 투쟁에 맡기려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노조 내부에서 주고받는 투쟁 참여 독려 메시지의 상당수는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특정 당을 지지하자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 모습이었다.

노조 내부에선 집행부의 이 같은 행보에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3월20일 상경투쟁에도 집행부는 당초 1000명의 참여를 예상했지만 참석 인원은 500여명에 그쳤다. 노조 관계자는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조합원들이 많지만 목소리를 내지 못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3호(2018년 3월28~4월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