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문지원씨(31)는 퇴근 후 은행을 찾는다. 은행 업무가 아닌 책을 보기 위해서다. KEB하나은행이 최근 오픈한 컬처뱅크 2호점에선 책을 보면서 간단한 음료를 즐길 수 있다. 문씨는 이번 주말저녁 남자친구와 컬처뱅크에서 책을 보며 간단히 맥주를 마실 계획이다.

은행 점포가 변하고 있다. 은행 점포를 복합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고객을 유치하는 ‘슬로우 뱅킹’이 대세로 떠올랐다.


시중은행은 은행지점을 공연을 즐기기 위해 찾는 휴식공간이자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추세다.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금융거래가 전체 은행거래의 90%을 차지하는 상황에 고객의 발길을 붙잡기 위한 의도다.

◆꽃 사고 책 읽고 다채로운 볼거리
은행 직원이 태블릿PC를 들고 고객에게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점포는 고객이 ‘찾아오게 만드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오후 4시면 문을 닫았던 점포가 개방형 문화플랫폼으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 KEB하나은행은 광화문에 ‘힐링서점’ 콘셉트로 컬처뱅크 2호점을 오픈했다. ‘책맥’(책과 맥주)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북바이북업체와 협업해 탄생시킨 복합 문화공간이다.

컬처뱅크에 방문하면 평일 밤 10시까지, 주말 저녁 7시까지 음료와 맥주를 유료로 즐길 수 있다. KEB하나은행은 별도로 공간관리 매니저를 채용해 북바이북 직원들과 함께 은행영업이 끝나도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다. 오는 7월에는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영업점을 개편해 3040 주부들을 대상으로 가드닝(gardening)에 초점을 맞춘 컬처뱅크를 오픈한다.


또한 공단지역 영업점에는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사랑방, 서울 강남지역 영업점에는 젊은 층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편집숍 등이 어우러진 컬처뱅크를 선보일 예정이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컬처뱅크는 각 업종에 맞는 소상공인과 협업해 도심 곳곳에 마련될 것”이라며 “은행거래를 하지 않아도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사랑방을 만들 계획이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올 초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점에 ‘아트뱅크’의 문을 열었다. 아트뱅크는 고객들이 머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아트피아노, 트릭아트, 폰 부스 등을 비치해 기존 영업점과의 차별화를 시도한 점이 특징이다.

앞서 우리은행은 특정 브랜드업체와 제휴해 ‘카페 인 브랜치’, ‘베이커리 앤 브랜치’를 선보였다. 유명 카페나 베이커리와 손 잡으면서 은행 내방 고객이 증가하는 효과를 거뒀다.

은행 관계자는 “이색점포는 특정 업체와 손잡고 다양한 콜라보를 선보이는 데 주력했지만 점차 개방형 문화플랫폼으로 전략이 바뀌고 있다”며 “고객이 경제와 문화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다양한 클래스,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KEB하나은행 컬처뱅크 2호점/사진=KEB하나은행

◆젊은 층 노린 ‘스마트지점’ 허물어
은행의 이색점포 집결지는 젊음의 거리 홍대다. 최근 시중은행이 잇따라 개방형 문화공간과 디지털 영업점을 홍익대 거리에 오픈했다. 은행 업무 공간은 한쪽에 설치된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몇 대가 전부다. 나머지는 공연장, 갤러리, 루프탑 공간으로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말 그대로 놀기 좋은 공간이 마련됐다.

2012년 ‘스마트브랜치’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던 무인점포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당시 신한은행 S20 스마트존, KB국민은행 KB스마트브랜치, 우리은행 스무살 우리, KEB하나은행 와삭바삭존 등 젊은층을 겨냥한 지점을 오픈했으나 폐점됐거나 소수만 남았다. 고객이 흥미를 느껴 신규 거래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수익채널로 연결되지 못한 것이다.

최근 KB국민은행은 건물 1층 외부에 누구나 앉아서 쉴 수 있는 ‘KB락스타 청춘마루’를 오픈했다. 1970년대 중반에 지어진 이 건물은 1·2층을 절반 가까이 허물어 누구나 앉아서 쉴 수 있다. 사무실이던 공간에 공연장, 갤러리, 세미나실이 생겼다. 건물 안 계단은 평소엔 북카페, 공연 때는 객석으로 쓴다. 은행원이 근무하는 영업점은 없고 ATM 몇 대만 설치했다.

신한은행도 홍대 홍문관에 디지털 존을 배치한 홍대지점을 개점했다. 디지털 존에서는 기존 입출금 창구 업무 90% 이상을 손님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홍대지점은 영업점 외부 전면에 폴딩도어를 설치, 영업시간 외에도 영업점 일부 공간을 홍대 교직원 및 학생 등이 활용할 수 있다. 신한은행은 앞으로 디지털 갤러리 공간을 만들어 홍대 재학생들의 미술작품 전시장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KEB하나은행도 마포구 서교동에 서교지점을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 지하 3층~지상 7층 규모에 달하는 신축공사를 진행 중이며 오는 12월에 완료된다.

은행 관계자는 “대다수 대학생들은 학창시절 친근하게 거래한 은행을 평생 주거래은행으로 이용한다”며 “과거 스마트점포를 복합문화점포로 탈바꿈시켜 미래 잠재고객을 포섭하는 움직임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의 이색점포 열풍은 세계적인 추세다. AI(인공지능)와 로봇이 금융거래를 돕는 4차 산업혁명은 은행 점포에 핀테크 기술을 퍼트려 고객이 찾지 않는 점포를 변화시키고 있다.

글로벌은행 도이치뱅크는 은행점포를 백화점 전시장처럼 꾸며 고객을 손짓한다. 일부 지점은 자동차부터 명품가방, 생필품을 전시했다. 3개월에 한번씩 숍인숍(매장 안에 소규모 매장을 따로 두는 영업형태) 방식으로 입점 업체를 교체해 고객의 눈길을 끈다.

미국의 캐피탈원(Capital One) 역시 카페스타일 은행 지점을 운영하며 반값 커피를 대표 상품으로 내놓고 고객들의 대화 공간을 마련했다. 은행이 고객의 자금문제를 해결해주는 조언자라는 이미지를 조성하기 위해 따뜻하고 친근한 지점환경을 만들었다.

김지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은행의 점포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며 “점포채널 운영전략은 수익성과 비용효율성, 시장 확대지역, 점포 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0호(2018년 5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