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출산율이 1명 안팎으로 떨어질 만큼 저출산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기성세대는 결혼하고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을 인생의 당연한 과정으로 여기지만 ‘N포세대’는 반문한다. “결혼을 왜 해야 하느냐”는 물음이다. <머니S>는 연중기획 <혼돈의 2030, 길을 찾아라> 시리즈 7번째 기획 ‘결혼·출산마저 포기한 2030’을 통해 청년의 고달픈 외침에 귀를 기울였다.

/사진=이미지투데이

# 서울 소재 중소기업에 근무 중인 3년차 직장인 정유남씨(32)는 결혼을 포기한 ‘비혼족’이다. 4대 보험료를 떼면 230만원이 채 안되는 월급에서 각종 공과금과 월세, 카드대금, 식비, 교통비 등을 제외하면 한달에 저축할 수 있는 돈은 20만원 남짓. 이 돈으로는 가정을 꾸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일찌감치 결혼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마나 학자금 대출이 없는 게 위안이다. 정씨는 “돈이 없어 연애도 힘든데 결혼을 하겠다는 건 스스로 빚더미에 앉겠다는 얘기”라며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아예 하지 않겠다는 친구가 많다”고 말했다.
2030세대의 결혼이 사라진다. 결혼을 생의 필수요건로 여기는 인식이 희미해지면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未婚)이나 경제적 능력을 갖출 때까지 결혼을 미루는 ‘만혼’(晩婚)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인생의 선택지에서 결혼을 지운 ‘비혼’(非婚)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제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것이다. 결혼이 사라지면서 한해 태어나는 출생아 수도 급격하게 줄었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비혼·비출산, 원인은 ‘돈’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2.94세, 여성 30.24세다. 지난해 혼인건수는 26만4500건으로 전년보다 1만7200건(6.1%) 감소했다. 이는 인구가 3469만명으로 지금보다 훨씬 적었던 1974년 25만9600건 이후 43년 만에 최저치다.

결혼이 줄면서 출산율도 바닥을 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1.17명보다 0.12명(10.3%)이나 줄어든 것이다. 합계출산율이 1.10명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05년 1.08명 이후 12년 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평균인 1.68명을 크게 밑도는 압도적인 꼴찌다. 이 같은 추세라면 합계출산율이 1.0명 아래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지적이다.


2030세대는 왜 결혼을 기피하는 것일까. <머니S>가 지난 4월 인크루트와 함께 2030세대 89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결혼·출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65.2%가 ‘아니요’라고 답변했다. ‘필요하다’는 응답자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결혼·출산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금전적 문제’로 전체 응답자의 25%가 꼽았다.

듀오휴먼라이프연구소의 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평균 결혼비용은 2억3085만원이다. 금수저가 아닌 평범한 남녀가 자립으로 마련하기엔 지나치게 높은 금액이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면 은행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결혼과 동시에 빚을 떠안게 된다.

아이를 낳아 자녀를 키우면 빚은 더 늘어난다. 보건복지부와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자녀 1명을 대학 졸업 때까지 키우는 데 22년간 총 3억890만원의 양육비가 든다. 다자녀 가정일수록 부담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행복해야 할 결혼과 출산이 오히려 부부를 빚더미로 내모는 셈이다.


◆다양한 정부지원 필요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5개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수립해 시행해 왔음에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장기간의 초저출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젊은 세대의 현실에 귀를 기울여 보다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경제적인 부담’이 비혼·비출산의 가장 큰 원인인 만큼 이를 덜어주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주거지 지원이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에 따르면 신혼부부 결혼 비용의 72%는 주택마련에 사용된다. 주택소유 여부는 출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택을 소유한 경우 자녀 출산비중이 67.8%인 반면 무주택인 경우 60.5%였다. 평균 출생아 수도 주택을 소유한 경우는 0.88명인 것에 비해 무주택의 경우 0.77명이었다.

김은혜 NH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지만 집을 갖고 있다는 안정감이 출산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주거지가 안정되지 않으면 잦은 이사로 환경 변화가 많아 자녀양육에 어려움이 있으므로 신혼부부에게 주택지원 정책이 이뤄진다면 출산율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30세대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용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청년층의 취업이 제한돼 사회진출이 늦어지면 결혼과 출산도 자연스럽게 늦어져 저출산 문제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취업이 결혼에 미치는 영향과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남자의 경우 미취업기간이 1년 증가하면 초혼연령은 0.38년(4.6개월) 높아지고 여자의 경우도 0.16년(1.9개월)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유진성 한경연 연구위원은 “비혼 및 만혼 문제를 완화하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취업기회 확대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50호(2018년 7월25~3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