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이동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진=사진공동취재단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이 재판에 넘겨졌다. 전직 사법부 수장이 피고인석에서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은 사법부 71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1일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행사, 위계공무집행방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등 손실, 공전자기록등 위작, 위작공전자기록등 행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2017년 9월 대법원장으로 재임하면서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법원의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를 위한 재판개입, 대내외적 비판세력 탄압, 부당한 조직보호 등 크게 3가지로 분류되며 구체적 혐의 사실은 47개에 달한다.
먼저 상고법원 도입, 법관 재외공관 파견 등 사법부의 이익을 위해 청와대, 외교부 등 행정부의 지원을 받아낼 목적으로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2015년 3~6월 서기호 당시 정의당 의원이 양 전 대법원장의 인사권 행사에 반발하고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하자 서 의원이 낸 '판사 재임용 탈락' 소송을 원고 패소로 종결하도록 담당 재판장에 요구한 혐의도 있다.
당시 최고 사법기관 위상을 놓고 갈등을 빚던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 위해 ▲헌재 내부사건 정보 및 동향 수집 보고 ▲현대자동차 비정규노조 업무방해 사건 관련 청와대를 통한 헌재 압박 ▲헌법재판소장 비난 기사 대필 게재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결정 사건에 대한 재판개입 ▲대법원과 헌재에 동시에 계류된 매립지 귀속분쟁 관련 사건 재판개입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및 재판 재판개입 등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을 비판한 법관들에게 인사불이익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2~2017년 매년 정기인사에서 총 31명을 '물의야기' 법관에 포함해 문책성 인사조치를 검토했고 부정적 인사정보를 소속법원장에게 통보하는 내용의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 법원 내부망에 사회 현안을 다루거나 재판을 비판하는 글을 쓴 법관을 상대로 문책성 인사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 조직을 보호할 목적으로 ▲부산고법 판사의 비위 은폐·축소 ▲'정운호 게이트' 관련 판사 비위 은폐·축소 및 영장 재판개입 ▲집행관 사무소 사무원 비리 수사 확대 저리를 위한 수사기밀 수집 지시 ▲법관 비리 수사 관련 영장청구서 사본 유출 지시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다른 법관 100여명 중 사법처리 대상을 추려 재판에 넘길 예정이다. 최고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한 만큼 사법처리 범위는 최소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또 양승태 사법부에 재판청탁을 한 것으로 조사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전현직 국회의원의 기소 여부를 결정한 뒤 사법농단 수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날 박병대(62·12기)·고영한(63·11기)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도 양 전 대법원장의 공범으로 불구속기소하고 먼저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59·16기)은 추가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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