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계에 지주회사 전환 바람이 거세다. 지주회사 제도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절 복잡한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풀기 위해 도입됐다. 지난해 9월말 기준 국내 지주회사는 일반지주 164개, 금융지주 9개 등 총 173개로 늘었다. 지주회사 체제는 지배구조의 투명화, 안정적인 경영권 등이 순기능으로 꼽히는 반면 총수일가의 지배력이 커지는 역기능을 드러내기도 한다. <머니S>는 오는 6월 38년 만의 공정거래법 개정을 앞둔 국내 지주회사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나아가 지주회사 선진형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방안도 모색했다.<편집자주>


[지주회사의 두 얼굴] ③총수일가 장악력 확대


국내 기업들의 지주회사 전환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제도적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출자구조를 단순화해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본연의 취지와는 달리 재벌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 낮잠을 자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만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속도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총수일가 지배력 2배 이상 확대


우리나라에 지주회사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20년 전이다. 당초 대규모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을 우려해 지주회사 설립과 전환을 금지하던 정부는 외환위기 직후 1999년 4월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구조조정 차원에서 지분정리를 통해 소유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기업들이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01년까지 9개에 불과했던 지주회사 수는 지난해 9월말 기준 일반지주회사 164개, 금융지주회사 9개 등 총 173개로 늘었다.

지난해 8월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변화하는 경제환경과 공정경제·혁신성장 등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강종민 기자
문제는 대기업들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 과정에서 총수일가의 지배력도 덩달아 증가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73개 지주회사와 소속 자·손자·증손회사 1869곳 중 총수 있는 19개 전환집단 소속 22개 지주회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환집단 소속 지주회사에 대한 총수 및 총수일가의 평균 지분율은 각각 28.2%, 44.8%로 총수일가 지분율이 집중됐다.
이는 인적분할·현물출자 방식을 이용한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총수일가가 분할 후 취득한 사업회사 주식을 지주회사 주식으로 교환(현물출자)한 결과다. 실제로 인적분할·현물출자 방식을 이용한 지주회사의 경우 분할 전에 비해 지주회사에 대한 총수일가 지분율이 2배 이상 상승했다. 사업회사에 대한 지주회사 지분율도 2배가량 높아졌다.


총수일가의 지배력이 확대되면서 사익편취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신영수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주요국의 지주회사 대부분은 100% 완전 자회사 형태로 운영되는 반면 우리나라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은 상장사 39.4%, 비상장사 83%에 불과하다.

특히 지주회사 173개 중 140개가 총수일가 소유였다.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적게 소유하면 배당수익을 충분히 올릴 수 없게 되고 대신 총수일가가 내부거래 등을 통해 사익을 취할 요인이 커질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지주회사로 인한 경제력 집중 우려가 어느 정도 현실화된 상황에서 지주회사 설립·전환 유도 방식의 기조를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낮잠자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물론 각 기업들은 내부감시를 담당하는 이사회 등 각종 장치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56개 집단 소속 253개 상장회사의 사외이사는 787명으로 전체 이사의 50.1%를 차지했고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은 95.3%였다. 그러나 2017년 5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1년간 이사회안건 5984건의 99.57%가 원안대로 통과됐다.

특히 대규모 내부거래 관련 안건 810건 중 부결된 안건은 단 한건도 없었다. 각 기업의 이사회가 사실상 ‘거수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통한 사익추구와 부의 대물림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재계의 반대로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공정위와 더불어민주당, 법무부 등 당정은 최근 공정거래법 개정안 쟁점에 대한 이견조율 등 진행과정을 점검하고 오는 6월께 개정안을 처리하는 방안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여야의 합의를 통해 일단 합의가 되는 것부터 일부개정이라도 서둘러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경규나 KDB산업은행 경제연구소 미래전략개발부 연구원은 “현행법상으로는 기업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할 때에 대주주가 적은 비용으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어 소수주주의 권리가 침해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며 “국내 지주회사체제는 지주회사부터 증손회사까지 최대 4단계로 이루어지는 피라미드식 지배구조로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데 유리해 경제력 집중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제도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규제는 경계해야한다는 지적이다. 경 연구원은 “기업의 지배구조 재편에 있어 지나치게 규제하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될 것”이라며 “현재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각 산업의 융합이 일어나는 시점에서 지주회사체제가 IT기업 등의 성장에 효율적인 지배구조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0호(2019년 2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