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회원을 모집하는 선배들의 외침, 삼삼오오 걸어가며 내는 맑은 웃음소리. 2월과는 확연히 달라진 햇살과 함께 봄이 왔음을 실감하는 징표다. 곧이어 목련, 개나리, 철쭉, 진달래, 그리고 꽃말이 ‘중간고사’인 벚꽃이 연이어 피고지며 캠퍼스를 찾아온다. 이파리의 ‘첫사랑의 맛’과 어울리지 않는 상큼한 라일락향이 캠퍼스에 퍼지면 캠퍼스는 이제 완연한 봄이다.
필자의 대학시절 봄은 늘 매캐한 최루탄 냄새와 함께 왔다. 캠퍼스 안 공간을 막아 장벽처럼 둘러선 전경들의 음울한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학생 누군가가 ‘그날이 오면’ 노래를 시작하면 입에서 입으로 퍼져 공간을 가득 채웠던 경험도 여전히 생생하다. 그때 본 세상은 정말 끔찍했지만 함께 노력하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던 그 무엇이 있었다. 시대는 암울했고 마음은 철없이 비장했지만 그래도 함께 꾸는 꿈이 드높았던, 돌이켜보면 아름답고 그리운 시절이다.
“요즘 학생들은 말이야”로 시작하는 문장이 자연스러운 꼰대가 된 지금은 요즘 학생들을 보면서 부러운 점이 많다. 소주와 짬뽕국물까지는 괜찮지만 “세상에 어려운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우리가 마셔도 되나”를 고민한 뒤에야 맥주잔을 기울이던, 너무 일찍 늙어버린 젊음을 살았다. 개인적 가치의 다양성은 일고의 가치도 없고 전체가 아닌 개인의 행복 추구는 버려야 할 악습으로 여겨지는 대학시절을 보냈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 않는 요즘 학생들의 ‘버릇없음’이 부럽고도 대견한 이유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바로 이런 면이다.
요즘 학생들의 싱그러운 웃음도 아쉽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세상은 덜 끔찍해진 것 같은데도 대학생활은 더 끔찍해진 모습이다. 세상은 이제 함께 노력해도 바꿀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닌, 힘을 합해 애써도 조금도 꿈쩍하지 않는 철옹성의 모습이다.
세상이 변하지 않으면 내가 그에 맞추는 수밖에. 사람을 일렬로 줄 세우는 황당한 방식을 바꿀 수 없다면 일단은 자신이라도 높은 학점과 영어점수를 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낫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니 학점은 하늘로 치솟고 높은 영어점수도, 자격증도, 인턴경험도, 점점 더 취업의 성공을 보장하기가 어려워졌다. 두려운 세상을 함께 마주한 곁을 내준 친구는 연대할 동료가 아닌 경쟁의 대상이 돼버렸다.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필자를 포함한 모든 꼰대들의 연대책임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4호(2019년 3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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