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운동장에 마련된 워킹스루 선별진료소. /사진=머니투데이 김휘선 기자
사람은 시력을 잃으면 모든 것을 볼 수 없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각을 제외한 네가지 감각, 즉 청각, 촉각, 미각, 후각으로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시각이 있을 때보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백년 동안의 고독’(가브리엘 G. 마르케스, 1927~2014)에 나오는 우르슬라 이구아란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나이가 들어 백내장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는데도 주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생활했다. 어둠 속에서 방안에 앉아 바늘에 실을 꿰고 단추를 달았다. 며느리(페르난다)가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고 온 집안을 뒤졌는데도 찾지 못하자 아이들의 침실 선반 위에서 찾아내기도 했다.
마르케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르슬라는 집안 식구들이 모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날마다 같은 길만 돌아다니고 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이 날마다 반복하는 과정에서 벗어날 때만 무엇인가를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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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 당신을 위험에 빠뜨린다━
우르슬라가 시력을 완전히 잃은 사실을 들키지 않고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습관을 정확하게 파악한 덕분이었다. 그는 페르난다가 전날 밤 침대에서 빈대가 나왔다고 법석을 떨 때 아이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며느리가 반지를 아이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었을 것이라고 판단해 선반을 지목할 수 있었다. 반면 페르난다는 날마다 자기가 지나다니는 곳들만 뒤졌으니 눈을 벌겋게 뜨고도 찾지 못했다.습관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위태롭게 한다. 산 토끼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활이나 총이 없을 경우에도 의외로 간단하다. 철사나 칡 줄기 등으로 올가미를 만들어 토끼 똥이 있는 길목에 설치해 놓으면 된다. 토끼는 다니는 길로만 이동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겁이 많아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모험을 하기보다 익숙한 길로만 다닌다. 안전하다고 여기지만 그런 믿음이 함정이 된다.
사냥용 공기총이 없을 때 새를 잡는 방법도 비슷하다. 기다란 대나무 2개에 새그물을 매고 새들이 자주 날아오는 덤불 주위에 세워놓는다. 새들은 가는 그물을 보지 못해 그물에 걸린다. 걸리는 순간 뒤로 물러나면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죽어도 전진!’만 하는 본성 때문에 그물에 엉킨다. 물러설 줄 모르는 본성으로 죽음에 이르는 비극을 겪는다.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연어도 회귀성 때문에 죽음의 위험에 빠진다. 넓고 넓은 바다로 나갔다가 알을 낳기 위해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 길목 길목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연어를 노리는 포식자들이 많다. 곰과 늑대, 독수리는 물론 사람들도 그들을 잡아간다. 새로운 것, 처음 가보는 곳을 찾아보려는 도전보다 익숙한 것에 집착하려는 본성이 치명적인 독이 된다. 물론 그 덕분에 생태계가 유지되도록 만들어진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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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알수록 모르는 게 더 많다━
아인슈타인은 사람이 아는 지식을 공(球)의 안쪽에, 모르는 것은 공의 바깥에 비유했다. 유치원 때 갖고 있는 지식은 탁구공만하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는 야구공만 해지고 고등학교 졸업 때는 핸드볼공 정도로 커진다. 대학교 졸업할 때는 축구공, 석박사 학위를 받으면 운동회 때 공굴리기 경기용 공처럼 커질 것이다. 배움이 커질수록 지식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모르는 것은 어떨까? 콩이 커질수록 바깥은 안보다 훨씬 빠르게 불어난다. 열심히 노력해서 아는 게 많아지면 모르는 것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아지는 것이다. 배울수록 많이 안다고 뻐기기보다 모르는 게 많아지니 허탈할 때도 있다.‘아인슈타인의 공’은 성호사설에 나오는 안동 사람 이시선(李時善)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멀리 남쪽 바닷가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을 잃었다. 사람에게 물어보니 왼쪽으로 가라고 했다. 자기 생각에는 오른쪽이 맞는 것 같았다. 잠깐 고민하다 그 사람 말대로 왼쪽으로 가니 바른 길이 나왔다. 다른 날 북쪽으로 여행 갔다 돌아오는 길에 묻지도 않고 옳다고 여기는 길을 잡았다. 하지만 틀린 길이어서 한참을 헤맸다.
이런 일을 겪은 이시선이 말했다. “자시자비 순인자시(自是者非 詢人者是, 스스로 옳다고 여긴 것은 틀렸고 남에게 물은 것은 옳았다). 땅이란 일정한 방향이 있고 의혹은 나 자신으로부터 생겼으니 이는 내 잘못이지 땅의 죄가 아니다.”
모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세상에는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게 문제다. 그래서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고 했다. 또 “부지런히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문(文)”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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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하게 ‘열린 세계’ 만드는 게 코로나19 극복의 길━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지난 4월5일 기준 47명으로 줄었다. 지난 2월20일 이후 46일 만에 50명 아래로 떨어졌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전세계 확진자가 127만명(4월6일 08시30분 기준)을 넘어서는 등 확산세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1, 2차 세계대전 전사자보다 많을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코로나19가 인간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 ▲지구를 독점해서 낭비하지 마라 ▲손 씻기,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지킬 것은 확실히 지켜라는 것 등이다. 사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사람보다 훨씬 많은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무모한 일일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습관, 손바닥만한 지식으로 내가 옳다고 여기는 착각,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오만은 코로나19의 피해를 크고 장기화할 수 있다.
사람은 대부분의 동식물들과 달리 뒷걸음질할 수 있다. 사람은 잘못을 뉘우치고 비슷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반성할 수 있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받아 생명을 유지하는 열린 세계(Open System)다. 열린 세계만이 엔트로피법칙(열역학 제2법칙)이 작용하는 닫힌 세계의 비극을 이겨내고 삶을 지속할 수 있다. 습관 착각 오만 등은 닫힌 세계를 초래한다. 반성 겸손 도전 등은 열린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 준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원리만이 변하지 않을 뿐이다. 변하는 것은 쉬운 일이며 변해야 올바르게 다스려진다. 역(易)은 바뀐다는 뜻 외에 쉽고 다스린다는 뜻을 갖고 있다. 역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0호(2020년 4월14~2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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