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고 답답하며 화가 난다. 누구나 한번쯤 이런 일을 겪는다. 문제는 해결 방법이 딱히 떠오르질 않는다는 것.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글을 남겨 하소연을 해보지만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고민을 거듭해도 답은 보이지 않고 결국 포기하게 된다. 이런 일을 겪지 않길 바라는 변호사가 있다. 소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함께 뭉치자”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가 ‘화난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이유다.
최초롱 화난사람들 대표. /사진=이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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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의사, 화나면 변호사에게━
지난 4월17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원효전자상가에서 ‘화난사람들’의 최초롱 대표를 만났다. 1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본인 포함 팀원이 4명뿐이지만 그의 어깨는 그 누구보다 무겁다. 억울함을 토로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아프면 의사에게 가고 화 나면 변호사에게 간다. 최 대표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어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유하지만 대부분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며 “문제를 공론화하는 에너지들이 적합한 법적 방법을 통해 제대로 해결되거나 개선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려는 플랫폼이 화난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화난사람들의 법인설립은 2018년 4월24일이다. 2018년 2월 말, 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재직하던 그는 직장을 그만뒀다. 재판연구원은 재판부 소속으로 재판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사건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쓰거나 판결문 초고를 작성해 판사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그는 잘 다니던 법원을 나와 곧바로 회사를 설립했다. 그렇게 시작한 화난사람들이 플랫폼 형태로 갖춰진 것은 그해 8월이다.
그가 법원을 나온 이유는 뭘까. 최 대표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법원에서 근무하면서 법조계가 매우 보수적이고 아날로그적이며 시대의 변화보다 뒤처진다는 것을 느꼈다고. 최 대표는 “일을 하면서 창업 아이템으로 생각하던 것이 화난사람들 같은 서비스”라며 “변호사 숫자가 늘어도 일반인들은 법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동안 대중과 법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플랫폼을 기획해왔다”고 설명했다.
창업은 모든 직장인이 꿈꾸는 일이지만 막상 실천하기엔 부담이 크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앞만 보고 달렸다”며 “훗일을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웃었다. 그는 “플랫폼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지고 성장하면 법조시스템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수익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나는 숫자를 모르는 법대생”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의 하루는 뉴스 리서치로 시작된다. 공정거래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도 빼놓지 않고 살핀다. 최 대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변호사를 찾아가 우리 시스템을 이용해달라는 식으로 시작했다”며 “최근에는 홈페이지 리뉴얼을 통해 누구나 문제를 제보할 수 있도록 바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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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목소리가 큰 힘이 된다━
제보의 중요성을 인지한 것은 지난해 말 논란이 된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 때부터다. 최 대표는 “대한항공 마일리지건의 경우 소비자 제보로 시작됐다”며 “화난사람들 플랫폼에 질문을 남겼고 거기에 댓글이 900여개나 달리면서 화제가 됐다”고 설명했다.공동소송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같은 피해를 겪고 있는 사람 2명만 모여도 진행할 수 있다. 대한항공 마일리지건의 경우 왜 공동소송이 진행되지 않았을까. 최 대표는 “재산적 피해가 당장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일리지 변경 약관 자체가 시행되지 못하게 약관청구를 하는 것이 낫다는 변호사들의 판단하에 진행됐다”고 귀뜸했다.
올해로 설립 3년 차인 화난사람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수많은 사건들을 맡아왔다. 화난사람들을 거쳐간 사건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것들이었다. 특히 최 대표는 “가장 만족스러운 결론이 난 것은 스카이에듀 사건”이라고 꼭 집어 말했다. 인서울(서울 내 대학교), 지거국(지방거점 국립대학교) 합격 시 100% 이상 환급하는 프리패스 상품을 판매했는데 조건을 달성한 학생들이 9개월 넘게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최 대표는 “당시 담당 변호사는 계속해서 사업의 의지가 있는 회사의 경우 내용증명을 발송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며 “안될 경우 2차로 소제기를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용증명 기한 마지막 날 환급이 이뤄졌다. 2019년 수능 바로 직전 날로 기억한다”며 “학생들 2018년이 2월쯤 대학에 합격했는데 그 다음해에 환급을 받게 된 것”이라고 했다.
화난사람들이 공동소송만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의미 있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국민의견을 묻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최 대표는 “대법원에서 올 상반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을 정하는데 양형 기준에 국민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양형연구회 회원인 김영희 변호사의 인터뷰를 보고 연락을 취해 국민의견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스로가 생각하는 양형, 감형 사유를 주관식으로 작성해야 하는데 N번방 이슈 이후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의견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억울한 사람들의 화를 풀어주려는 최 대표의 최종 목표는 뭘까. 최 대표는 “최근 홈페이지 리뉴얼 작업을 하면서 제보 및 신고 기능을 만들었다”며 “처음에는 개인의 문제일 수 있는데 따지고 보면 사회적인 이슈나 제도의 문제인 것들이 있다. 제도를 같이 바꾸는 데 동참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제보 및 신고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 1차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화날 때 짜증날 때 억울할 때 화난사람들이 포털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를 수 있도록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최종 꿈”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3호(2020년 5월5~1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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