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크게 화제가 된 ‘애플카’는 IT업체의 입김이 세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그래픽=김영찬 기자
지금까지 자동차업체는 엔진이라는 높은 진입 장벽을 통해 시장을 지배해왔다. 엔진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가 시장 지배력으로 이어졌고 엔진의 특성이 브랜드의 이미지로 이어졌다. 하지만 전기동력화라는 격변기를 마주한 자동차업계의 고민은 깊다. 핵심부품인 배터리는 몇몇 업체가 시장을 지배했고 각종 전자장비와 여러 첨단 기능을 매끄럽게 구현할 운영체제(OS)에도 IT(정보기술) 업체의 입김이 점점 세지고 있어서다. 최근 크게 화제가 된 ‘애플카’ 역시 이런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평이다. 애플의 자동차업계 진출을 진단하고 경계가 모호해진 미래차를 살펴봤다.
애플카에 들썩거린 ‘한국’, 웃은 ‘팀 쿡’
애플과의 협력, 실보다 득 많지만 단순 하청 피해야
현대차가 아닌 기아가 애플과 협력한다는 소식과 함께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차를 만들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사진은 프랑크푸르트 IAA에서 공개된 기아 콘셉트카 /사진제공=기아
‘애플카’ 소식에 대한민국이 들썩거렸다. 1월8일 애플이 협력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대자동차 주가는 20만원 초반에서 장중 25만원을 넘어섰고 다음날 28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현대모비스와 기아는 물론 관련 부품회사 등 관련주로 묶인 기업의 주가가 치솟자 관련 업계에서는 애플의 파괴력을 실감했다는 평이다.
현대차는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개발 협력 요청을 받고 있으나 초기 단계로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내용과 관련해 확정되는 시점 또는 1개월 이내에 재공시할 것”이라고도 했다.

현대차가 공식적으로 ‘애플’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관련 업계에서는 이들의 협업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당사자 모두 협력 제안 소문에 대해 부정하지 않은 점과 실제로 충분히 검토할 만한 시나리오라는 점 때문이다.


같은 달 20일 현대차가 아닌 기아가 애플과 협력한다는 소식과 함께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차를 만들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현대차가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에 힘을 싣는 만큼 모빌리티 업체로 변신을 밝힌 기아가 애플카를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물론 기아는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해당 사실에 대해 “당사는 자율주행 전기차 사업 관련 다수의 해외 기업과 협업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공시했다.

업계에서는 당사자가 이처럼 모호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을 두고 협력 제안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지만 현 상황에선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애플의 제안이 현대차 외에도 복수의 글로벌 자동차 회사에게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앞서 2014년 애플은 ‘타이탄’이라는 자동차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나 비용과 효율 문제로 2019년 갑자기 중단을 선언했다가 최근 다시 끄집어내며 주목받고 있다. 최근 협력설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으며 팀 쿡 애플 CEO는 애플카에 대해 ‘웃음’으로 답했다.

애플의 車회사 협력 제안은 필연?
관련 업계에서는 애플의 협력 제안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사진은 프랑스 캉브레 거리에 주차된 애플 맵스사의 자동차 /사진=로이터
관련 업계에서는 애플의 협력 제안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당장 2024년 애플카를 선보인 뒤 2027년쯤 자율주행이 가능한 전기차를 대량 생산하려면 기존 완성차업체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업계는 물론 외신에서도 애플이 자동차를 직접 만들지 않고 기존의 자동차 제조사에게 의존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전기차 업계의 선두주자인 테슬라조차 제대로 차를 만들기 시작하는 데 무려 10년이 걸렸기 때문.

이에 대해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까지 애플의 제품 생산 방식을 볼 때 폐쇄된 방식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어떤 글로벌 자동차 업체가 애플의 제안을 수락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상황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당장 애플카는 실체가 없지만 자동차회사와 연결된다면 상당한 시너지효과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애플이 자동차 파운드리(위탁생산) 방식 사업을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것이란 기대감도 나왔다. 주문형 생산 형태의 시도의 가능성을 살필 수 있을 것이란 점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통하면 단순 하청이 아닌 협업 형태의 주문 생산도 가능하다고 본다”며 “애플이 원하는 차를 만들려면 유연한 생산이 가능한 전용 플랫폼과 대량생산체제 및 자율주행 노하우까지 겸비한 곳이어야 하는데 기아차가 그런 면에서 협력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글로벌 완성차업체 중 전기차 전용 플랫폼은 ▲GM 얼티엄 ▲폭스바겐 MEB ▲현대차그룹의 E-GMP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E-GMP를 비롯한 친환경 기술을 다른 회사에 판매할 수도 있다고 밝힌 만큼 협업 전망이 밝다는 평이다.

게다가 애플이 자동차를 만들어본 적이 없는 만큼 안전을 비롯한 다양한 부분에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고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수급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차를 직접 만들려면 대규모 시설을 갖춰야 하고 천문학적인 투자비도 소요된다. 이 같은 이유로 애플은 여러 파트너를 통한 위탁생산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애플과 협력은 ‘양날의 검’
업계는 애플이 현대차그룹의 문을 두드린 것 자체에 관심을 보인다. 사진은 프랑크푸르트 IAA에서 공개된 기아 콘셉트카 /사진제공=기아
업계는 애플이 현대차그룹의 문을 두드린 것 자체에 관심을 보인다. 애플은 ‘혁신의 대명사’로 불리며 스마트폰과 PC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 제품을 선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심리가 자동차로 옮겨온 것이고 그런 회사의 협력 파트너로 거론된 점이 결국 주가에 반영됐다는 평가다.

성 교수는 “애플 브랜드 선호와 한국이 세계적으로 자동차 강국이라는 점이 기대심리를 갖게 만들었다”며 “실제로도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민선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애플카 소식에 주가가 오른 부분이 있지만 주가는 결국 실적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실적을 전망하고 개선폭 내에서 움직이는 종목을 선호해야 할 것이며 단지 애플카 수혜라는 점만으로 종목을 매매할 수는 없다”고 주의를 요구했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산업적 측면에서 경쟁력 상실을 우려했다. 이 위원은 “자동차의 성격이 점차 모빌리티 서비스로 변화하면서 운영체제(OS)가 핵심으로 자리하게 되는데 애플은 OS에 강점이 있다”며 “어떤 산업이든 시장에서 최종 고객을 상대하는 업체가 수익을 가져가게 된다. 수억명의 아이폰 사용자로 애플만의 생태계가 구축된 만큼 어떻게든 자동차를 끼워 넣고 싶을 것”이라며 국내 업체가 단순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했다.

김필수 교수는 협상 결렬을 우려했다. 그는 “현대차그룹과 애플의 협업이 성사되지 못하면 미래 사업 다양성 측면에서 선택폭이 좁아질 수 있다”며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타격이 더 클 것이고 함께하면서 다양한 노하우를 쌓을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자동차와 IT의 융합, 모호해지는 경계
남아있는 이권 경쟁… 살아남는 곳은?
GM이 CES2021에서 공개한 플라잉카 /사진=로이터
자동차산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박람회로 불리던 CES에서 조차 해마다 미래 모빌리티 기술이 공개되며 모터쇼처럼 변모하고 있으며 반대로 유력 모터쇼에도 IT업체의 참여가 크게 늘었다. 그만큼 자동차와 IT가 더 밀접해졌음을 뜻한다. 더욱이 최근 애플이 오는 2024년까지 자율주행 전기차를 출시하겠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미래자동차의 패권을 두고 자동차업계와 IT업계의 주도권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미래차의 영역을 ▲친환경차(순수전기차·수소전기차) ▲자율주행 ▲공유이동수단(서비스) 등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는 2030년을 기준으로 수소·전기차의 판매량이 신차의 20~30%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고 ‘내비건트리서치’는 신차의 50%가 자율주행차일 것으로 예상했다. ‘맥킨지’는 자동차 관련 서비스가 1조5000억달러(약 1658조원)의 시장으로 성장한다고 전망한다. 3가지 영역은 앞으로 점차 통합돼 ‘전기를 동력원으로 하는 자율주행차를 활용한 공유서비스’로 발전할 전망이다.
‘IT+자동차’ 가속화되는 미래차
이처럼 자동차 기술의 진화 방향과 성장성이 뚜렷하게 예측되면서 최근 글로벌 IT기업이 잇따라 미래 모빌리티 사업을 노리고 관련 업계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자동차사업에 눈독을 들이던 IT 공룡은 그동안 완성차업체가 요구하는 제품이나 소프트웨어 등을 공급하는 데 그쳤지만 최근 들어 보다 적극적으로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애플과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협업 가능성이 제기됐고 MS(마이크로소프트)는 GM(제너럴모터스)의 자율주행 자회사 ‘크루즈’에 20억달러(약 2조2000억원)를 투자했다. 중국 바이두는 최근 지리자동차와 합작해 ‘바이두 자동차’를 설립하고 자율주행 전기차를 생산할 것임을 밝혔다.

자동차가 점차 첨단화되며 단순히 탈 것을 넘어 생활의 일부로 성격이 바뀌어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진 상황이다. 따라서 관련 기술을 보유한 IT업체와 완성차업체가 제휴를 통해 미래차 주도권 경쟁에 나선 것. 서로 협력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가 어렵다고 보는 상황이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IT 공룡이 완성차 시장 진입을 공언하거나 암시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전환기를 맞이한 자동차 산업에 또 다른 파괴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며 “기존 자동차 산업의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차 위한 IT업계 역할은?
메리 바라 GM CEO가 CES2021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GM
전문가들이 말하는 미래 자동차는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같이 디바이스(기계)에 중점을 둔다. 배충식 카이스트 공과대학장은 “자동차 내 IT 역할이 커지면서 융합에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그동안 자동차는 기계기술을 대표했다면 이제는 첨단 기술의 집합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IT기업이 자동차 시장을 기웃거리는 이유도 자동차가 디바이스화된 미래차 시장에 발을 담그기가 쉬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완성차업체가 자동차의 전동화와 자율주행 시대를 앞당기고 있어 IT기업 입장에서는 지금이 관련 시장 진출 적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올리버 칩스 BMW CEO(최고경영자)는 전기차 생산 비중을 2023년 20%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GM도 2025년까지 전세계에서 30대의 새로운 전기차를 출시할 예정이다. 현대차도 아이오닉5를 비롯해 총 4개의 전기차 라인업을 통해 올해 순수전기차 판매를 16만대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다수의 글로벌 완성차기업이 전기차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IT기업의 시장 참여가 더 늘어날 가능성을 높인다.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진입장벽이 낮고 사실상 전자장비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겪은 테슬라가 지난해 판매량 면에서도 안착했다는 평을 받으며 시장의 주목을 받은 것도 IT업계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하다는 평이다.

게다가 AI·빅데이터·사물인터넷 등 첨단 기술에 투자해온 IT기업은 미래차의 핵심인 자율주행 기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강점도 지녔다. 인텔의 자회사인 ‘모빌아이’는 CES 2021에서 인텔과의 협력을 통해 자율주행차 라이다 통합 칩을 2025년까지 개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모빌아이는 자율주행차를 미국(디트로이트·뉴욕)·일본(도쿄)·중국(상하이)·프랑스(파리) 등 4개국 주요 도시에서 시범 운행할 계획이다. 일본의 소니도 자율주행 전기차 ‘비전-에스’(VISION-S)를 공개했다.

배 교수는 “IT기업과 자동차기업이 가진 장점은 뚜렷하게 나뉜다”며 “앞으로 양측의 기술이 ‘혼합’이 될지 ‘화합’이 될지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IT기업이 자동차를 스스로 제작하기에는 역부족이고 그렇다고 자동차기업이 IT의 도움 없이 미래 모빌리티 기술을 확보하려면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와 IT, 주도권 어디로?
자동차와 IT 모두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협업을 통해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맞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다만 ‘누가’ 주도할 것이냐는 문제로 남는다. 어느 한쪽은 하청기업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워트레인·섀시·바디 등 하드웨어 플랫폼을 제공하는 자동차 산업과 자율주행기능·응용 서비스 기술 등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IT의 힘겨루기가 남은 것이다.

IT기업은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지배력을 높여 앞으로 자동차 제작사를 통제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완성차업체는 소프트웨어를 제공받더라도 기존의 완제품 제조기업과 부품기업 간 역할 모델을 선호할 수 있다. 따라서 당장은 협력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앞으로 상황에 따라 양측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셈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와 IT기업 간 협력 사례가 이어지는 것은 현재로선 융합의 개념이다”면서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주도권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찬규 기자 star@mt.co.kr
지용준 기자 jyju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