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강화되는 환경규제와 지난해 생산 차질 등 어려움을 겪은 자동차업체는 대세로 자리한 친환경차 외에도 ‘럭셔리카’와 ‘슈퍼카’로 대변되는 고급차를 탈출구로 삼았다. /사진=각 사, 그래픽=김영찬 기자
국내·외 설문조사와 연구보고서 등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소비 양극화가 더욱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날로 강화되는 환경규제와 지난해 생산 차질 등 어려움을 겪은 자동차업체는 대세로 자리한 친환경차 외에도 ‘럭셔리카’와 ‘슈퍼카’로 대변되는 고급차를 탈출구로 삼았다. 외부 요인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상위 1%를 위한 시장인 만큼 확실한 수익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호를 공략하려는 업체들의 남다른 전략과 현 상황을 진단해봤다.
고급차보다 더 고급스럽게…
럭셔리 3사, 플래그십 SUV 시장 패권 경쟁 본격화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국내 럭셔리SUV(승용형 다목적차) 시장의 패권을 노린다. 마이바흐 브랜드 최초의 SUV ‘더 뉴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 600 4매틱’을 앞세워 롤스로이스 ‘컬리넌’과 벤틀리 ‘벤테이가’에 도전장을 던졌다. /사진제공=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국내 럭셔리SUV(승용형 다목적차) 시장의 패권을 노린다. 마이바흐 브랜드 최초의 SUV ‘더 뉴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 600 4매틱’을 앞세워 롤스로이스 ‘컬리넌’과 벤틀리 ‘벤테이가’가 선점한 럭셔리SUV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 이로써 롤스로이스·벤틀리·메르세데스-마이바흐 등 세계 3대 럭셔리 브랜드가 모두 SUV를 국내에 소개한 것으로 앞으로 상위 1%를 겨냥한 치열한 자존심 대결이 펼쳐질 전망이다.
◆럭셔리SUV 삼국지의 시작

롤스로이스·벤틀리·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여타 브랜드와는 차별화된 ‘프리미엄 위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평가받는다. 이 중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원하는 대로 차를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운영하며 ‘나만의 차’에 아낌없이 비용을 지불하는 이들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최고급 세단을 중심으로 국내 럭셔리카 시장이 형성됐지만 이번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SUV 출시로 럭셔리SUV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메르세데스-마이마흐 GLS로 럭셔리SUV의 엔트리 차급을 출시한 셈”이라며 “마이바흐는 더 이상 개별 브랜드가 아닌 메르세데스-벤츠의 고급형인 만큼 보다 표준화된 상품을 통해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경쟁 모델보다 많은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의 등록대수 집계에 따르면 세 럭셔리 브랜드는 그동안 국내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왔다. /그래픽=김영찬 기자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의 등록대수 집계에 따르면 세 럭셔리 브랜드는 그동안 국내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왔다. 국내 판매량은 2016년 ▲롤스로이스 56대 ▲벤틀리 185대 ▲마이바흐(S클래스) 709대였지만 2019년엔 각각 140대·319대·711대 등으로 급등했고 지난해 각각 189대·424대·470대를 기록했다. 대당 수억원에 달하는 ‘집만큼 비싼’ 차의 판매가 연간 수백대나 되는 셈이다.
특히 업계에서는 롤스로이스와 벤틀리의 판매량이 늘어난 배경으로 SUV 라인업의 강화를 지목한다. SUV 모델 출시 이후 전체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 한국수입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해 롤스로이스의 SUV 모델 컬리넌은 88대로 전체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했다. 2019년 62대보다 41.9% 판매가 늘어난 수치며 올 들어 1~2월까지는 16대를 기록했다. 벤틀리의 벤테이가(V8모델)는 125대. 전년 56대보다 123.2% 증가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대형 SUV인 GLS는 160대를 기록했고 그중 최상위 모델 GLS 580이 146대 팔렸다. 올해는 2월까지 400d가 289대 등록되며 관심을 모았다. 이달 초 벤츠는 GLS 라인업에 마이바흐 모델인 GLS 600을 추가했다. 회사는 마이바흐 브랜드의 첫 SUV라는 점에서 큰 기대를 안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판매된 전체 승용차는 165만7186대로 이 중 SUV 판매(RV와 픽업트럭 포함 수치)는 85만949대로 전체의 51.4%를 차지했다. 2012년 21.9%, 2015년 34.1%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성장세다.
롤스로이스 컬리넌. /사진제공=롤스로이스

◆상위 1% 모셔라… 차별화 전략에 눈길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최근 미디어와 VIP 등을 대상으로 소규모 그룹 관람 행사를 통해 신차를 꼼꼼히 살필 기회를 마련했다. 이날 무대에 오른 더 뉴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 600 4매틱은 독보적인 기술력과 독창성이 총망라된 더 뉴 메르세데스-벤츠 GLS와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의 장점을 결합한 차종으로 평가받는다.

현장에서 만난 마크 레인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제품&마케팅 부문 부사장은 마이바흐 GLS에 대해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와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를 아우르는 마이바흐 브랜드 통합 전략을 가지고 있다”며 “첫 상담 단계부터 구매와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보다 풍부하고 높은 고객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구매부터 활용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고객 가치 사슬’ 중요성을 언급한 것.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주문형 생산방식을 차별화된 매력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벤틀리는 영국 본사의 비스포크 전담 부서인 뮬리너에서 단 20명의 한국 소비자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한정판 모델 ‘벤테이가 W12 코리안 에디션 by 뮬리너’를 공개했다. 롤스로이스는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는 ‘비스포크’ 외에도 블랙배지에디션 등 특별판 모델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판매량이 늘어난 데 따른 차별화 전략이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럭셔리 브랜드가 SUV를 앞세우는 건 흐름에 발맞춰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라고 분석했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SUV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자동차제조사는 이 시장을 놓칠세라 신차 공세를 퍼부었고 그 결과로 전체 판매량의 절반을 넘어서는 효과로 이어졌다”며 “럭셔리 브랜드도 이 같은 흐름에 편승하기 위해 SUV 모델을 출시했고 그 전략은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대중브랜드의 차 10대를 파는 것보다 럭셔리 브랜드 차 1대를 파는 편이 낫다”며 “메르세데스-마이바흐가 2억원대, 벤틀리가 3억원대, 롤스로이스가 4억원대부터 시작하는 제품을 내놓은 만큼 이들의 경쟁도 흥미로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럭셔리카 시장은 차별화된 가치를 전달함으로써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만큼 엔진이 달린 내연기관 중심 차종의 생산은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한 첨단 친환경차의 출시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찬규 기자 star@mt.co.kr
‘더 센 녀석’ 찾는 사람들
수억원대 슈퍼카 안사고 몰아본다
AMG 스피드웨이 위 AMG 차들이 질주하고 있다 /사진제공=벤츠

#1 자동차 수집이 취미인 A씨는 최근 페라리가 국내 선보인 하이브리드 슈퍼카 ‘SF90 스파이더’에 관심이 많다. SF90 스파이더는 페라리 최초이자 슈퍼카 분야의 유일한 PHEV(하이브리드 전기차) 스파이더 모델로 3개의 전기모터와 V8터보엔진을 합해 무려 1000마력을 뿜어내서다. 기름을 덜 먹지만 힘은 더 세진 점에 관심을 보인다. 페라리는 국내 고성능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만큼 슈퍼카 시장의 주요 타깃인 ‘상위 1%’에게 ‘소유하고 타는 즐거움’을 전달하려는 게 목표다.
#2 B씨는 자동차 마니아다. 주말이면 레이싱 서킷(자동차경주장)을 찾아 스트레스를 푼다. 이미 쓴 돈만 해도 수천만원. 기회가 되면 아마추어 레이싱 대회에 출전하는 게 목표다. 최근엔 ‘원메이크 레이스’에 관심이 많다. 단일 차종으로만 참여할 수 있어 차를 구입할 때 해당 브랜드에서 인센티브를 줘서다. B씨는 자동차회사의 드라이빙 스쿨을 통해 운전실력을 키웠다.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는 물론 용인 AMG 스피드웨이도 섭렵했다. 최근엔 인제스피디움에서 진행되는 현대 N 드라이빙 스쿨의 최종 과정에 관심이 많다.


바야흐로 고성능차 전성시대다. 한국에서 ‘억’대를 넘어가는 고가 자동차 선호 현상은 최근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판매량은 역대 최대 규모를 달성했다. 더 강력하고 운전의 재미를 느끼려는 이가 늘었기 때문이다.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꼽히는 포르쉐·람보르기니·페라리(포·람·페) 등도 수억원대의 가격에도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한국시장 판매 1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도 각각 고성능 브랜드인 ‘AMG’와 ‘M’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섰다.

◆찻값만 수억원… 슈퍼카 시장 ‘떠들썩’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해 1억원 이상의 고가 수입차 신규 등록대수는 전년에 비해 48% 증가한 4만3158대로 전체 판매량의 15% 이상을 차지했다. 고가 자동차의 상당수는 고성능 스포츠카다. 자동차가 과거 단순한 이동수단에서 최근 일종의 취미 생활로 떠오르자 고성능 차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는 평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성능 차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며 “한국도 어엿한 고성능차 시장의 주요 거점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고성능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포·람·페’의 지난해 판매량은 8419대로 전년(4724대)과 비교해 78.2% 증가했다. 페라리(212대)와 람보르기니(330대) 모두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지만 고성능 슈퍼카 시장 확대를 주도한 것은 포르쉐다. 포르쉐는 지난해 7877대를 팔아 전년(4262대)보다 85%나 성장했다.


포르쉐의 빠른 성장에 벤츠·BMW 등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고성능 브랜드인 AMG와 M의 판매량이 크게 늘었음에도 포르쉐보다 뒤처졌기 때문. 벤츠와 BMW의 고성능 브랜드인 AMG와 M은 지난해 판매량이 각각 전년 대비 58%와 53% 상승했다. 판매 대수는 AMG와 M 각각 4332대와 2859대다.
BMW 뉴 M5 컴페티션 /사진제공=BMW

◆AMG vs M, 체험 마케팅에 승부수
벤츠와 BMW는 올해 고성능 브랜드를 강화하면서 ‘체험 마케팅’에 집중할 계획이다. 다양한 고성능차를 직접 체험하도록 함으로써 소비자를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두 회사는 고성능 모델을 앞세워 서킷에서 ‘드라이빙 스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수억원대의 스포츠카를 체험하는 만큼 각 교육 프로그램마다 최소 20만원에서 200만원까지 가격을 매겼다. 지난해 말 기준 벤츠와 BMW 교육 프로그램의 누적 이용자 수는 각각 1200여명과 14만60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벤츠는 2018년 경기도 용인에 개장한 AMG 브랜드 전용 트랙인 ‘AMG 스피드웨이’를 활용하고 있다. 벤츠 관계자는 “스피드웨이에서 AMG를 경험하고 안전 운전 및 레이싱과 관련된 다양한 주행 기술을 쉽고 정확하게 배울 수 있도록 독일 메르세데스-AMG 본사에서 개발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드라이빙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BMW는 벤츠보다 4년가량 빠른 2014년부터 ‘BMW 드라이빙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누적 방문자가 100만명을 넘어서며 사실상 자동차 복합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는 평. 올해는 특히 고성능 M 브랜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집중 체험 프로그램인 ‘M 코어’를 확대 운영한다. 드리프팅과 서킷 공략법 등을 교육하며 소비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것.

올해도 고성능 스포츠카 시장은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그래픽=김영찬 기자
◆수억원대 스포츠카 신차 대전 펼쳐진다
올해도 고성능 스포츠카 시장은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각 브랜드마다 고성능차 출시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벤츠는 올해 베스트셀링 모델인 AMG GT 4도어 쿠페의 부분변경 모델을 비롯해 주력 SUV 모델에 AMG 마크를 달아 출시한다. BMW는 이보다 더 공격적이다. 지난해 10종의 M 브랜드 모델을 내놓은 데 이어 올해 뉴 M3와 M4 등 7종의 M 모델을 새롭게 선보인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고성능차 시장의 확대는 자동차 문화의 확대라는 측면과 맞아떨어지지만 최근엔 과시 측면이 강하다”며 “SNS로 자신을 알릴 기회가 많아졌지만 국내에선 자동차 외에 재력을 과시할 기회가 적어 고가의 수입차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와 동시에 차를 제대로 즐기려는 이들도 함께 늘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성장하는 시장은 맞다”고 덧붙였다.

지용준 기자 jyju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