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신구 21그램 대표. / 사진=이한듬 기자
반려동물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남자가 있다. 권신구 21그램 대표(39)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 1500만 시대. 동물은 더 이상 ‘애완’이 아닌 인생을 함께 하는 동반자이자 가족같은 존재가 됐다. 다만 대다수의 동물은 인간보다 수명이 짧은 탓에 이별의 순간은 빠르게 찾아오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반려동물과의 아름다운 이별은 과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반려동물 장례사업 뛰어든 설계 디자이너━
2014년 문을 연 21그램은 반려동물 장례 서비스 플랫폼이다. 창업 초기 장례예약 중개서비스 만을 중점적으로 제공하다 지난해부터는 경기 광주시에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열고 직접 장례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권신구 대표가 처음부터 반려동물 장례 사업을 구상했던 것은 아니다. 경희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한 권 대표는 설계 디자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7년 동안 건축 설계업무를 하던 권 대표는 어느날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저도 강아지를 키우고 있지만 장례문화는 잘 몰랐고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가본 적도 없어요. 설계를 위해 직접 장례식장을 가봤는데 당시 합법적인 반려동물 장례식장이 10여개 밖에 안됐고 시설이 너무 낙후돼 아쉬움이 컸습니다.”
권 대표는 자신이 보유한 설계 디자인 능력을 접목하면 반려동물 장례식장의 개선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으로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사명인 21그램에도 특별한 의미가 담겼다. 사람이 사망하면 폐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며 무게가 21그램 줄어드는데 이는 ‘사람 영혼의 무게’라는 가설이 있다. 반려동물이나 사람이나 외형은 다르지만 영혼의 무게는 같다는 의미로 사명에 21그램을 차용했다는 게 권 대표의 설명이다.
사업 초기 환경은 좋지만은 않았다. 갑자기 반려동물 장례식장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차별화를 위해 중개 플랫폼으로 눈을 놀렸다. 음식 배달을 중개하는 ‘배달의 민족’처럼 반려동물 보호자와 장례식장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대다수 보호자들이 고령층인 데다 동물병원을 통한 장례식장 연계가 익숙한 탓에 성장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21그램은 성숙한 장례문화를 도입하겠다는 목표에 집중하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현재는 직접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에 1999년 문을 연 국내 1호 반려동물 장례식장 ‘아롱이천국’을 인수해 리모델링을 거쳐 최신 시설을 갖춘 21그램을 지난해 11월 오픈했다.
권 대표는 “오픈 초기에는 월 40여건의 장례를 진행했는데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용객이 크게 늘었다”며 “6월 기준으로 월 300여건의 장례 서비스를 제공했고 이용 건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21그램 반려동물 장례식장 경기광주점. / 사진=21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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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화’ 목표… 3년 내 15개점 개소 계획━
이용률이 빠르게 증가하는 배경에는 21그램이 제공하는 전문적이고 차별화된 서비스가 있다. 보호자가 장례식장 이용 문의를 하면 전담 장례지도사가 1대1로 배정돼 상세한 일정 등을 상담한다. 장례가 시작되면 사람의 장례를 치르듯이 반려동물을 염습하고 수의를 입힌 뒤 입관하는 절차를 거쳐 화장, 수골, 분골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전문적으로 제공한다. 가족과도 같은 보호자들의 슬픔에 공감하며 위로하는 일도 장례지도사들의 몫이다. 모든 과정에는 3~4시간 가량이 소요된다.
권 대표는 “경기광주점에 반려동물 전문 장례지도사만 15명이 근무한다”며 “보호자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민간자격증을 이미 보유한 지도사라고 하더라도 21그램에 입사 후 3~6개월 간 체계적인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야만 실무에 정식으로 투입한다”고 설명했다.
권 대표는 21그램을 거쳐 반려동물과 이별한 보호자들이 감사 인사를 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한번은 펫박람회에 참가했었는데 어떤 분이 음료수를 사다줬다”며 “알고 보니 21그램을 이용했던 고객인데 ‘사람보다 극진히 장례를 치러줘서 정말 위로가 됐다’는 인사를 전해와 뿌듯했었다”고 소회했다.
권 대표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브랜드화 하는 게 목표다. 사람의 장례를 치를 때 특정 상조회사를 떠올리는 것처럼 21그램을 브랜드화 하겠다는 것이다. 권 대표는 “아직까지도 보호자가 원하는 서비스 보다는 기존에 연결된 업체를 알선하고 소개비를 받는 등 수익성 위주로 운영되는 업체들이 많다 보니 그 피해가 결국 보호자에게 돌아간다”며 “잘못된 관행과 산업의 구조를 깨려면 대표적인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 21그램은 3년 안에 전국에 장례식장 15개점 개소를 계획하고 있다. 연내 2호점이 문을 열 예정이며 내년 상반기에는 3, 4호점이 오픈한다. 권 대표는 “장기적으로는 반려동물의 장례뿐만 아니라 재입양까지도 도움을 주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반려동물 장례산업의 문화와 구조를 바꾸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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