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가격의 인상으로 부담을 느낀 20대 사이에서 음주 문화가 변화하는 모양새다. 사진은 주류 가격이 7000~9000원으로 기재된 식당의 메뉴판(왼쪽)과 2000~3000원으로 판매되는 마트 진열대에 놓인 주류. /사진=서진주 기자
"서민술, 이제 식당에서 찾을 수 없어요. "
평일에 들른 서울 마포구의 한 주점. 이 주점의 소주 가격은 1병당 7000원이다. 비싼 소줏값 탓인지 주점에는 빈자리가 더 많았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이들 중에서도 술이 아닌 음료를 마시는 대학생 무리가 눈에 띄었다. 홍익대 재학생 신모씨(여·23)는 "여기서 저녁을 먹은 뒤 친구들과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려고 한다"며 "왜 똑같은 술을 식당에서 비싼 돈 주고 마셔야 하냐"라고 반문했다.

서울에 위치한 식당·술집의 소주 가격은 1병당 5000~8000원, 맥주 1병 가격 역시 6000~9000원이다. 물가가 상승하면서 술값도 함께 올랐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주류 가격 인상으로 '서민술'이라고 불리는 소주가 6000원 시대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주류 가격의 인상 폭이 커지자 20대 사이에서는 "최저시급을 제외한 모든 게 올랐다"며 불만을 내비쳤다. 치솟는 주류 가격에 음주를 즐길 곳이 점차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술집을 대체할 새로운 장소를 찾았다. 20대 사이에서 트렌드로 자리잡은 음주 장소는 어디일까.
"요즘 누가 술집에서 마시나요"… 서민술 즐기러 '이곳' 간다
MZ세대들이 알뜰하게 주류를 즐기기 위해 술집이 아닌 색다른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진은 편의점에서 주류를 구매한 뒤 즐기는 모습. /사진=서진주 기자
눈에 띄게 변한 것은 장소다. 20대는 술집이 아닌 편의점에서 주류를 구매한다. 소주 1병 기준 편의점에서 사면 술집보다 최소 2.5배, 최대 4배가량 주머니가 가벼워진다. 구매한 술은 편의점 앞에 놓인 파라솔에 자리잡아 마시거나 파티룸과 같은 장소를 대여해 이동한다.
인스타그램에 '파티룸'을 검색하면 파티룸에서 술을 마시는 게시물을 다수 볼 수 있다. 파티룸은 4시간·6시간·8시간·1박 등으로 예약할 수 있으며 방마다 인테리어와 옵션 등이 다르다. 파티룸에서 친구들과 술파티를 즐긴 적 있다는 홍모씨(여·26)는 "우리만의 공간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라며 "원하는 술을 종류별로 사갈 수 있어 술마카세(술+오마카세)에 온 듯한 느낌"이라고 밝혔다.

유명한 파티룸은 예약 경쟁률이 높고 가장 빠르게 예약할 수 있는 날짜가 약 1개월 뒤일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다. 따라서 바로 술을 마시고 싶은 경우 편의점이나 인근에 위치한 벤치 등에서 소소한 음주를 즐긴다. 특히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는 소주 4병·맥주 4캔을 각 1만원대에 판매해 더욱 인기다.
일반 술집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주류를 판매하는 편의점·마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편의점·마트에서 소주 4병·맥주 4캔을 각 1만원대에 판매하는 모습. /사진=서진주 기자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다수의 편의점 앞에는 빈자리가 없이 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생일 파티를 하는 무리도 볼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만난 이정훈씨(남·25)는 "편의점에서는 소주 4병에 1만원인 반면 식당에서는 소주 1병에 1만원 수준이다"며 "4분의1 가격으로 술을 즐기니까 텐션이 더 오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씨와 함께 술을 마시던 최모현씨(남·25) 역시 "(편의점에서는) 4병을 다양하게 고를 수 있어 좋다"며 "요즘 식당이나 술집은 안주도 비싸기 때문에 대학생이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친구들을 보면 가격이 특별히 저렴하거나 특색있는 마케팅으로 차별화된 술집이 아니면 굳이 방문하지 않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와인·칵테일이 대세?… "비싼 술로 확실히 즐기자"
술집에서 판매하는 소주·맥주 가격이 치솟자 와인·칵테일 등 고가 주류가 뜻밖의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은 소주·맥주 대신 와인·칵테일을 즐기는 모습. /사진=서진주 기자
주점에서 소주와 맥주 가격이 오르자 뜻밖의 고가 주류가 인기를 끌고 있다. 바로 와인과 칵테일이다. 술집에서 8000원짜리 소주를 마실 바엔 돈을 더 지불해 고급스러운 술을 즐기겠다는 심리가 작용한 탓이다. 빠른 속도로 술잔을 비워야 하는 소주·맥주 문화와 달리 와인·칵테일은 음미하는 특성이 있어 느긋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는 점도 인기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와인바 앞에는 약 10팀이 대기하고 있었다. 30여분을 대기했다는 이라온씨(여·24)는 "친구들끼리 와인 1병을 주문하는 것이 일반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전했다. 그는 "돈 내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으려면 와인바가 더 좋은 듯하다"며 "일반 술집에 가면 안주랑 술만 툭 던져주고 가는 등 불친절해 기분이 상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와인바뿐만 아니라 칵테일바 입구도 문전성시다. 기념일을 맞아 칵테일바를 방문했다는 20대 커플은 "일반 술집은 주류 가격이 상승한 것도 문제지만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대화를 나눌 수 없다"며 "값 비싼 소주를 시끄러운 곳에서 마시는 것보다 분위기 있는 곳에서 칵테일을 즐기는 게 이득"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소주·맥주에는 없는 칵테일만의 장점으로 달달함을 꼽았다. 그러면서 "칵테일 1잔에 1만원대를 웃도는데 달콤함과 알코올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며 "일반 식당에서 똑같은 맛의 소주를 여러 병 마시는 것보다 다양한 맛의 칵테일을 맛보는 게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해당 칵테일바 바텐더 류모씨(남·31)는 최근 젊은 세대의 방문이 급격히 늘었다고 밝혔다. 류씨는 "칵테일마다 도수가 다르기 때문에 술찌(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쉽게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이 있다"며 "일반 식당에서 비싼 돈을 주고 술을 마시기 아까워하는 술찌들도 칵테일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