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시카고. 숲속에 버려진 12살 어린아이의 시체가 미국 전역을 발칵 뒤집었다. 손발은 뒤로 묶여진 채 잘려 나갔고, 얼굴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져 있었다.
 
현장의 안경이 단서가 돼 붙잡힌 용의자는 명문 법대를 조기 졸업한 수재 중의 수재들. 이들을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받게 했던 변호사 찰스 대로우의 최종 변론이 그 유명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다. 도대체 전도유망한 두 청년이 왜 그리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뮤지컬 <쓰릴 미>는 80여년 전 실제 일어난 유괴살인사건을 무대 위에서 되살려낸다. 이야기는 사건 후 34년째 복역 중인 '나'의 기억 속에서 출발한다. 막이 열리면 가석방 심의가 열리는 감옥이 나타나고, 수감 중인 '나'는 심문하는 목소리들에 의해 범죄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무대는 단조롭기 그지없다. 어두운 조명 아래 어렴풋하게 드러나는 나무 한그루와 소파가 전부인 텅 빈 무대다. 이 쓸쓸한 무대를 배경으로 이름도 없이 '나'와 '그'로 불리는 단 둘의 남자 배우가 전 막을 이끌어나간다. 그러나 90분 내내 객석은 묘한 긴장감에 휩싸인다.
 
니체의 초인 사상에 심취한 '그'는 위험한 유희를 꿈꾸고, 그를 사랑하는 '나'는 갈등하면서도 어둠의 수렁 속으로 함께 빠져든다.

동성애와 살인이라는 소재도 파격적이지만, 허를 찌르는 심리적 대결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제3의 배우라 일컬어지는 피아노 선율도 압권. 배우들의 내면을 따라 흐르는 잔잔하면서도 괴기스런 피아노 선율이 감정의 진폭을 한층 배가시킨다.
 
2007년 국내 초연된 이 작품은 공연 때마다 객석 점유율 90%를 웃도는 흥행 작품. 그러나 대중적이지는 않다. 충격적인 반전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으로 두 번 세 번 보는 마니아가 많은 반면, 화려한 무대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실망을 줄 수 있다. 작품 취향에 따라 호불호(好不好)가 극명하게 갈리는 문제작인 셈이다.
 
김무열 최재웅 김재범 최수형 최지호 조강현 김하늘 지창욱 등 8명의 남자 배우가 공연 일정에 따라 돌아가며 매력을 발산하는 덕에 평일에도 객석은 여성 관객들로 꽉꽉 채워진다.
 
11월14일까지 신촌 더 스테이지. (02) 744-4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