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이 가입자 유치전의 주무기로 쓰이지 못하도록 방송통신위원회가 이통사의 보조금 과당 경쟁에 영업정지 조치까지 취했으나 실제 시장에서의 ‘약발’은 미약하다. 앞서 방통위는 지난 1월7일부터 3월 13일까지 LG유플러스·SK텔레콤·KT에 대해 순차적 영업정지를 명령했다.
방통위가 최근 이통3사의 보조금 동향을 매일 파악해 상임위원들에게 보고할 정도로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지만 상한선을 초월하는 보조금 지급 행태는 여전하다.
◆‘박리다매’ 추가 보조금, 온라인·대리점서 횡행
현재 온라인 판매점과 일부 대리점들은 ‘박리다매’의 수단으로 상한선보다 높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휴대폰 대리점들은 이통사로부터 받은 보조금에 자체 '펀딩' 금액을 합쳐 고객에게 보조금을 지급한다. 지역 내 다른 대리점과의 판매 경쟁에서 앞서야 이통사로부터 보다 많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업계 생리다보니 펀딩 금액을 과도하게 올려가며 가입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펀딩 금액을 올려 고객에게 타 대리점보다 높은 보조금을 지급하면 상품당 받을 수 있는 가격은 낮아지지만 이를 통해 판매 실적을 높일 수 있다. 전형적인 박리다매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판매점이나 대리점들이 유동 인구가 많은 상업지구에 몰려있다”며 “예를 들어 KT 대리점이 자체적으로 돈을 끌어모아 높은 보조금을 고객에게 주게 되면 옆에 있는 SK텔레콤 대리점도 가입자를 뺏기지 않으려고 더 높은 보조금을 쓰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온라인 공동구매 시장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공동구매 판매점들은 보조금을 한 모델에 집중적으로 쏟아 부어 ‘공짜폰’, ‘특가폰’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 모델에 판매를 집중함으로써 역시 박리다매 효과를 보겠다는 계산이다.
한 온라인 판매점 관계자는 “최근 KT에서 SKT로 옮길 경우, 베가S5를 34요금제로 기계값 없이 공짜로 쓸 수 있도록 특판행사를 진행해 완판했다”며 “다른 통신사를 이용하다가 SKT로 번호이동을 하는 고객에게는 31만5000원까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온라인 판매점에서는 99만9000원 하는 베가R3가 할부원금 5만400원에 판매되고 있다. 31만5000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여기에 10만원 요금제로 2년 약정 계약을 체결해 63만3600원의 요금할인을 적용한 가격이다.
또다른 온라인 판매점에서는 KT 고객이 MVNO 사업자인 CJ헬로비전으로 갈아탈 경우 보조금 45만원을 받고 베가R3를 구매할 수 있다. 이 경우 보조금 상한선 27만원은 크게 의미가 없다
온라인 휴대폰 판매점에서는 정부의 보조금 상한선 이상의 보조금을 지급하며 공짜폰, 특가폰을 판매하고 있다
◆팔짱 낀 방통위 “큰 문제 아니다”이같은 시장 상황에 대해 정작 관리당국인 방통위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눈치다. 현재 휴대폰 시장 전반에 걸쳐 보조금 경쟁이 완화돼 있는 편이라, 상한선을 넘긴 보조금이 지급되더라도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라는 시각이다.
방통위 통신시장조사과 관계자는 “과당 보조금 지급이 온라인과 일부 지역, 일부 경로를 통해 나타나고는 있으나 이를 시장의 전반적인 모습으로 파악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며 “폰테크(단말기를 헐값에 산 후 바로 되파는 행위)하는 사람들, 불법 딜러 등 이통사의 통제가 잘 안 되는 루트를 통해 (보조금이 과당 지급되는 경우가) 나오고 있는 것이지 전반적으로 보면 보조금 경쟁이 많이 완화된 상황이다”고 말했다.
통신사간 번호이동이 하루 2만4000건 이상 발생하는 경우를 보조금 경쟁 과열 상태로 보고 있는데 현재 번호이동 건수가 하루 2만 건 미만에 그치고 있으므로 시장 상황이 꽤 안정적이라는 것이 방통위의 판단이다.
그러나 불법 보조금 근절 의지를 강조한 청와대나 불법 보조금 선도 사업자에게 차별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열을 올렸던 방통위의 최근 모습과는 크게 다른 입장이다.
◆이통3사 “본사 컨트롤 영역 밖 이야기”
보조금 과당경쟁으로 영업정지 조치를 받고 과징금까지 낸 이통사들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한 마디로 콘트롤 할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문제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식이다.
SKT 관계자는 “대리점주가 이통사로부터 받는 인센티브를 고객한테 주는 보조금으로 돌려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실질적으로 영업현장에서 보여지는 보조금은 27만원 이상이 된다”며 “대리점의 이러한 행위는 이통사의 보조금 정책과 관계 없으며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KT 관계자 역시 “대리점·판매점들이 자기돈 써서 보조금을 상한선보다 더 많이 지급하는 것은 이통사 본사가 일일히 관리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그렇다 하더라도 KT는 자체 모니터링 결과를 토대로 공짜폰이나 과도한 보조금을 주는 판매점과의 거래에 제한을 두는 방식으로 유통 질서를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이통사 관계자는 일부 대리점과 온라인 판매점의 추가 보조금 지급문제가 본사의 보조금 정책과 무관할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이 관계자는 “이통사 본사로부터 돈이 그만큼 나오니까 그 돈 갖고 고객에게 (보조금 주고)하는 것이지 대리점이 미쳤다고 자기돈 갖고 그렇게 과다한 보조금을 지급하겠냐”며 “대리점이 자체 펀딩을 해봤자 그 액수는 얼마 되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누구는 제 가격에 폰을 사고, 누구는 공짜 혹은 저가로 폰을 구입하는 '차별 행태'를 막겠다는 취지로 시행중인 정부의 보조금 규제. '순진한’ 소비자만 ‘봉’이 되는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