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 나는 지하철 무가지에 지하철 맛집을 연재한 적이 있다. 그때 같은 지면에는 공중파에 방송했던 ‘리얼코리아’ 후일담도 같이 나갔다. 그 후일담은 '모 케이블방송 담당 PD'가 연재했는데 시선이 따뜻한 좋은 콘텐츠였다.
수원의 칼국수집 내용이 잔잔해서 일부러 가족과 같이 찾아갔었다. 칼국수를 먹는데 그 지하철 무가지 기사가 벽면에 붙어 있었다. 좀 아는 척을 했다. 그 기사 같은 면에 내가 쓴 기사도 연재한다고 했더니 주인아주머니가 반가워하면서 칼국수 값을 안 받았다.

자기의 식당 기사를 쓴 사람도 아닌데 그런 작은 인정이 왠지 푸근했다. 주인아주머니는 태생적으로 선하고 소박한 품성을 지녔다. 바로 그 집이<대왕칼국수>다.


그 후 <대왕칼국수>를 2005년 <월간외식경영>에서 취재한 적이 있었다. 기사 제목은 ‘微笑萬福걐 微笑萬客來 미소의 힘’이다. 순진한 신입 여기자가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꼬깃꼬깃 2만원을 여기자 손에 꼭 집어주더라는 것이다.

기자들에게 음식점에서 촌지를 절대로 받지 말라고 하는 회사방침에 신입 여기자가 완강히 거절을 했더니 ‘우리 식당이 허름해서 무시 하냐’며 한사코 2만원을 밀어주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기자는 2만원을 받아서 왔다. 기자가 나에게 이걸 어떻게 하냐고 보고를 해서 나는 웃으면서 “그건 정이다”하고 용인했다. 참 소박한 촌지였다.

그 때 취재한 ‘미소’라는 기사가 지금까지 <월간외식경영> 내용 중 가장 좋은 기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은 거의 없고 사진만 나갔는데 <대왕칼국수> 주인아주머니의 소탈한 웃음에 인생의 모든 것이 다 담겨져 있다.


◇ 세월이 멈춘 음식점 <대왕칼국수>
간만에 <대왕칼국수>로 콩국수와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오후에 수원에서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 약속장소가 <대왕칼국수>에서 멀지 않아 점심식사를 그곳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인근 화상(華商) 중화만두집 <수원>에서 찐만두와 고기만두를 포장했다. 고기만두는 사무실 직원에게 갖다줄 생각이고 찐만두는 콩국수와 곁들여서 먹을 생각이었다.

<대왕칼국수> 전경은 몇 년 만에 왔는데 변한 것이 없다. 세월이 멈춘 것 같다. 주변이1970~1980년대 영화를 찍을 때 로케이션을 하기 아주 적합한 장소다.

식당 안에 손님이 어느 정도 차있다. 입지적으로 불리해도 <대왕칼국수>는 나름 유명한 곳이다. 주인아주머니가 주방에서 칼국수를 자르고 있다. 등이 많이 굽었다.

많이 늙으신 것 같다. 사진을 찍었더니 그 소탈한 웃음은 변함이 없다. 내가 관상가는 아니지만 참 착한 심성을 담은 관상이다. 세명이서 칼국수 하나와 콩국수 두 개를 주문했다. 모두 4000원.

지하철 무가지에 게재되었던 후일담 기사가 아직도 두 장이나 붙어있다. 모자(母子)의 뭉클한 정이 서린 글이다.

‘배달 가는 어린 아들 가여워 평생 동안 고쳐 쓴 요리비법’. 요리비법은 주인아주머니가 맞춤법이 엉망인 육필로 적은 레시피다. 공부를 많이 못시킨 가여운 아들의 미래를 위해 어머니가 공책에 서투른 내용으로 칼국수 레시피를 작성했다는 이야기다. 가슴이 짠한 모정이다.

◇ 맛보다는 정(情)으로 찾는 칼국수집
콩국수와 칼국수가 나왔다. 역시 양이 많다. 면이 거칠고 굵다. 전형적인 손 반죽이다. 굵고 딱딱해 수원사는 지인이 이가 튼튼해야 먹을 수 있다고 반 농담을 했던 바로 그 면이다. 같이 간 직원은 면이 매력이 있다고 한다.

그게 진심인지 이 분위기에 몰입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맛있지 않다. 지극히 소박한 먹을거리다. 콩국수 콩물도 유명 콩국수 식당들처럼 세련되지 않다. 기교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콩물이다. 전체적으로 음식이 투박하다.

오랜만에 음식에 투박하다는 표현을 그대로 쓴다. 직원이 콩국수, 칼국수와 중국 찐만두가 의외로 잘 어울린다고 한마디 거든다. 김치가 지나치게 숙성되었지만 다 잘들 먹는다.

멋쟁이 할머니 손님들이 식사를 다하고 나간다. 이런 허름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다. 아마도 소박한 정과 맛 때문에 이 식당을 찾아올 것이다. 중산층 주부들도 식당 문으로 들어온다. 이런 손님들이 <대왕칼국수>에 오는 것은 분명히 맛 때문은 아닐 것이다.

고마운 손님들이다. 식사를 하면서 주방에 있는 주인아주머니 얼굴을 보았는데 문득 슬픈 표정을 읽었다. 언젠가 수원 사는 음식을 잘 아는 지인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이 뇌리를 스친다.

잠시 후 계산을 하면서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계산을 할 때 보니 두꺼운 합판지 같은 것에 친필로 쓴 내용이 있다. 주인아주머니와 종업원이 웃으면서 한사코 손으로 가린다. 순간적으로 본 내용은 분명히 아들에게 전하는 글이다. 종업원 아주머니가 슬쩍 이야기하기를 아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모종의 사건으로… 인생은 무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