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AI 업계 발전을 위해 의료 데이터를 개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의료 AI(인공지능)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성능과 직결되는 의료 데이터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의료 AI 기업들의 사업 확대를 이끌기 위해 국가 검진 사업에 AI 기반 판독 보조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AI 성장엔 데이터 필수인데… 의료 분야는 '민감 정보' 걸림돌

업계에 따르면 의료 AI는 일반 AI 분야와 견줬을 때 데이터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 챗-GPT 등 생성형 AI는 인터넷 자료나 사용자 입력 정보를 데이터로 활용한다. 의료 AI가 필요로 하는 의료 데이터의 경우 민감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기업이나 사용자가 쉽게 접근할 수 없다. 개인정보보호법과 생명윤리법 등에 저촉될 수 있어서다. 의료 데이터는 치료 기술 혁신 등을 바탕으로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할 수 있으나 데이터 활용에 관한 사회적 우려가 커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국내 의료 데이터의 표준화·통합 체계는 충분하지 않은 편이다. 이주영 의원(개혁신당·비례)은 최근 정책토론회에서 "한국은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 온 의료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후발주자인 미국이 이를 표준화해 사업화에 이르기까지 발전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국내 1위 의료 AI 기업 루닛을 이끄는 서범석 대표도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과의 AI 기업인 간담회에서 "미국·유럽·중국은 대규모 자국 의료 데이터를 가지고 의료 특화 파운데이션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며 "(한국도) 전략을 잘 짜서 확장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대규모 의료 데이터 확보는 의료 AI 경쟁력과 직결된다. 과거엔 AI 모델이 단순하고 처리하는 데이터가 많지 않았으나 요새는 AI 모델이 대형화되면서 필요한 모델과 데이터의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AI 경쟁의 본질은 데이터 확보 싸움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한국은 병원 등 의료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EMR(전자 의무기록)을 통해 막대한 의료 데이터를 쌓았지만 사업적 활용은 제한된다. 기업들이 병원으로부터 의료 데이터를 구매해 사업을 활용하고 있는 수준이다.


업계는 평소 AI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이 대통령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의료 데이터 관련 규제가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AI 관련 공약으로 '의료 등 산업별 데이터 결합·활용을 위한 규제 혁신'을 내세웠다. 기업의 연구·개발 지원을 위한 공공데이터 개방을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수장으로 AI 전문가인 배경훈 장관을 임명하며 AI 강국 도약 속도를 높였다.

국가 검진에 AI 활용… 기업·환자 모두 '방긋'

사진은 루닛과 중동 최대 의료서비스 기관인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부다비 병원관리청(SEHA)의 로고. /사진=루닛


국가가 의료 AI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국가 검진 사업에 AI 기반 판독 보조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게 대표 사례다. AI 판독 보조 시스템은 엑스레이 등 영상진단 과정에서 AI가 질병 의심 부위를 표시해준다. 해당 시스템을 도입하면 의료 AI 기업은 AI 기술력을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수익성도 챙길 수 있다. 국민은 의료 AI 혜택을 누려 효율적인 건강관리가 가능하다. 의료진은 영상진단 시간 단축으로 업무 피로도가 낮아진다.

국내 의료 AI 기업들은 이미 해외에서 국가 단위 암 검진 사업에 참여해 성과를 내고 있다. 루닛은 지난 3월 중동 최대 의료서비스 기관인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병원관리청(SEHA)과 유방촬영술 AI 영상분석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 MMG' 공급 계약을 맺고 UAE 아부다비 국가 유방암 검진 사업에 착수했다. 루닛은 2022년 호주를 시작으로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 유럽에 이어 일부 중남미 국가,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 중동 지역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국가 암 검진 시장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환자들도 국가 검진 AI 판독 보조 시스템 도입을 원하는 분위기다. 한국폐암환우회는 지난 5월 김윤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을 찾아 폐암 검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정책 제안서를 전달했다. 조정일 한국폐암환우회 회장은 해당 자리에서 "2년마다 진행되는 건강검진에 포함된 흉부 엑스레이만으로는 폐암을 조기 발견할 수 없다"며 "AI 기반 판독 보조 시스템을 도입하면 동일 장비로도 조기 폐암을 훨씬 정밀하게 진단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김 의원은 "해당 시스템 도입 등을 위해 정부 관계자 및 전문가들과 논의하겠다"고 화답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 검진의 조기진단 효율성과 유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AI 기반 판독 보조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며 "더 나아가 AI 기반 전주기 국가 검진 관리 플랫폼이 구현된다면 공공의료 혁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