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살아보고 결정? 따져보고 계약!
애프터리빙제, 건설사 부도땐 계약금 돌려받지 못할 수도

‘살아보고 결정하라’는 광고 문구를 내건 건설사들의 분양 촉진 마케팅, 이른바 ‘애프터리빙 계약제’. 지난해 말부터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 마케팅 수법으로 인해 거액을 날릴 우려가 있는 서민이 수천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건설사들이 기존 애프터리빙제를 업그레이드했다는 명분과 함께 ‘프리리빙제’ 혹은 ‘스마트리빙제’ 등의 이름으로 탈바꿈해 선보이고 있지만 맥락은 비슷하다.


전세대란이 벌어지는 요즘, 혹하기 쉬운 애프터리빙제에 대한 수요자들의 조심스런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대출 은행 주의보 발령

금융감독원은 최근 은행을 대상으로 집단중도금대출의 불완전 판매 여부를 점검했다. 또한 상담원이 전화로 고객에게 대출 상품을 자세히 고지하는 ‘해피콜’ 제도를 의무화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애프터리빙제 등과 관련한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은행들을 상대로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이 같은 조치는 소비자에게 충분한 설명 없이 중도금 대출이 이뤄진 사례가 많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금감원은 앞서 9월 중순경 열린 소비자보호심의위원회 회의에서 애프터리빙제와 관련한 ‘소비자보호 강화 방안’을 심의 의결하기도 했다.

실제 지난해 말 건설사들이 집중 도입한 애프터리빙제를 통한 대출 규모는 올 상반기에만 5000여가구, 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애프터리빙 기간 안에 건설사가 부도날 경우 계약자는 돈을 돌려받지 못 할 수도 있다. 하반기 들어 미분양 촉진 열풍이 거세지면서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문제점이 드러난 일부 은행은 미분양 집단 중도금 대출상품 판매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경기 불황으로 건설사가 약속을 못 지키게 되면 대규모 분쟁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애프터리빙이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점을 사전에 알려 불의의 피해자를 막고자 선제적으로 조치했다”고 말했다.

◆보증금 날리고 쫓겨날 수도

애프터리빙제 혹은 프리리빙제로 불리는 이 마케팅의 특징은 입주자가 분양대금의 일부를 계약금(약 10%)과 은행의 중도금 대출(분양가 대비 약 50%)로 내고 2~3년간 살아본 뒤에도 계속 살고 싶으면 정식 계약을 하고, 맘에 들지 않으면 중도금과 계약금을 전액 환불해준다는 것이다.

미분양 아파트 해소를 위해 최근 건설사들이 내놓은 특수 마케팅으로, 일산·인천·김포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개를 치고 있다.

요즘처럼 전세가 없어 난리인 때, 전세보다 훨씬 싼 금액에 거주할 수 있고 차후에 건설사에서 보증금도 되갚아준다고 하니 소비자 입장에선 정말 혹할 수밖에 없는 제도로 보인다. 허울 좋은 제도 속 숨겨진 문제점은 없는 것일까. 금감원에서 본격적인 검사에 나선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터다.

우선 애프터리빙 기간 안에 건설사가 부도 등으로 빚을 갚을 능력이 사라지면 부채는 고스란히 입주자가 떠안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대출 명의인이 입주자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1억원이 넘는 보증금만 날리고 집에서 쫓겨나게 된 부산 강서구 퀸덤1차 아파트 입주민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패소당하기 2년 전인 지난 2010년부터 입주자들은 애프터리빙제에 따라 보증금 일부만 내고 살고 있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은행으로부터 아파트를 가압류 당하는 날벼락을 맞았다. 당시 아파트 소유권은 이미 시공사 영조주택이 대출을 받은 23개 금융기관(대주단)에 넘어간 상태였던 것. 입주 보증금을 받아 챙긴 시공사는 2년 사이 부도를 냈고, 입주자들은 소유권은커녕 커다란 빚만 지게 됐다.

◆복잡한 셈법…계약서 작성 신중해야

‘제2의 퀸덤 아파트 입주민’이 되지 않기 위해선 예상 가능한 문제점들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가장 핵심은 애프터리빙제 계약자는 전세계약서가 아닌 분양(매매) 계약서를 쓴다는 점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얼핏 전세제도인 것처럼도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막상 계약서를 살펴보면 그것이 아니란 걸 금방 알 수 있다.

계약서를 쓰고 나면 본인 명의의 아파트를 매매한 셈이므로 중도금 이자, 취·등록세, 재산세 등이 발생하게 되는데, 건설사들은 이자를 대신 부담한다는 조건으로 입주자 명의의 대출까지 설정하기도 한다.

계약 기간 이후 아파트 정식계약을 하지 않고 나가는 경우, 앞서 언급한 대납된 이자나 취등록세 등을 다시 돌려줘야 하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심지어는 아파트의 감가상각이나 추가 위약금 등을 요구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만큼 대납 계약 조건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분양 정보업체 관계자는 “애프터리빙제 같은 마케팅의 경우 그 대상이 정상적인 물건이 아니라 악성 미분양 물건인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건설사가 부도날 경우에는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건설업체의 시공능력 평가순위나 자금조달의 안전성 등을 면밀히 검토해 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한편 업계에 따르면 현재 애프터리빙제(스마트리빙제, 프리리빙제 포함)를 도입한 단지는 두산건설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를 비롯해 신안건설산업 ‘김포 신안 실크밸리 3차’, 현대건설 ‘용인 성복힐스테이트’, 대우건설 ‘송도 글로벌캠퍼스 푸르지오’ 등이 있다.


☞ 애프터리빙제 주의사항 5계명

1. 구매결정 포기 시 환불 조건을 확인해야 한다. 비슷한 이름의 전세형 분양제일지라도 아파트 및 건설사별로 환불 조건이 각각 다르다.

2. 매매시점과 납입금액 환불날짜가 계약서상 명시돼 있는지 살펴보자. 매매시점이 표기돼 있지 않으면 주택이 팔리지 않을 경우 납입금을 돌려받기 힘들다.

3. 구매 포기 시 위약금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 상담이나 홍보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가 위약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4. 대출 이자에 대한 부담을 정확히 살펴봐야 한다. 구매를 포기할 경우 그동안 건설사가 대납해 준 이자를 계약자가 갚아야 하는 조건이 걸려 있을 수 있다.

5. 보증 주체가 어디인지가 중요하다. 시행사나 분양대행업체 등이 영세한 규모일 경우 향후 사업 부진에 따라 피해가 계약자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
(리얼투데이 제공)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