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이 씨티은행 노동조합과 법적공방을 펼치고 있다. 190개 지점 가운데 3분의 1 수준에 해당하는 56개의 지점을 폐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은행 지점 폐쇄를 놓고 노사가 소송을 벌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폐쇄 예정인 곳도 일부 공개됐다. 노조에 따르면 통폐합된 지역은 서울 신용산·종로, 인천 신기·간석·용현·계산동, 경기도 성남시 이매·정자동 및 부천, 부산 등 10곳이다. 지점통폐합과 함께 대규모 구조조정도 진행할 계획이다. 희망퇴직(구조조정) 인원은 650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직원들을 당혹케 한 것은 이번 통폐합이 지점 실적과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사측은 흑자점포까지 과감히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러한 가운데 오는 5월 폐쇄가 확정된 씨티은행 직원 A씨와 어렵게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다행히 이번 구조조정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이른바 살생부 명단이 바뀔 수도 있고, 올해는 피했지만 언제 자신이 대상에 오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A씨는 전화인터뷰에서 "불안하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씨티은행 /사진=뉴스1 DB
◆자부심이 불안감으로… 11년차 직원의 하소연


A씨가 씨티은행에 입사한 기간은 올해로 만 10년째. 그는 아내와 함께 초등학생 자녀 둘을 키우고 있다. 불과 몇개월 전만 해도 그는 정년퇴직까지 자신의 가족과 씨티은행을 위해 최선을 다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희망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씨티은행이 대규모 지점 통폐합과 구조조정에 돌입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다. 요즘에는 일도 손에 안잡힌다. A씨가 몸담고 있는 지점은 설립된지 이제 겨우 3년째. 최근 1~2년간 열심히 영업을 한 덕에 작년 말 처음으로 흑자를 냈다. 올해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지점폐쇄라는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사측은 단호히 폐쇄를 결정했다. 예정된 시기는 5월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앞으로 열심히 하자며 직원들끼리 서로 다독이며 격려했어요. 신생지점이 흑자지점으로 바뀐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그래서 올해를 가장 기대하는 해로 꼽았죠. 그런데…"

A씨는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이번 희망퇴직에서는 제외됐지만 앞으로 수백여명의 선배, 동기, 후배들이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또 언젠가는 자신이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특히 지점마저 폐쇄되면서 이러한 느낌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고 그는 전한다. 최근에는 본사 임원과 면담도 마쳤다. 사측 임원이 지점장과 관리자급을 대상으로 일대일 면담을 제안한 것.

"면담에서 부행장 자신도 안타깝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협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 이후에나 회사가 조용해질 것 같다는 말도 전했어요. 사실 궁금한 질문도 던졌는데 아직 결정된 것이 없어서인지 뾰족한 답을 듣지 못했어요.

"내년, 내후년에는 내 차례가 되지 않을까 불안하기만 합니다. 지금부터 제2의 직업을 찾아야 하나 그런 생각마저 들곤 해요. 당연히 애사심도 줄었죠. 회사에서 언제 내쳐질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잖아요."

본지가 취재한 결과 인사부 부행장 등 일부 임원들은 각자 영역을 분류해 지점 통폐합 대상이 된 지점의 직원들을 만나 면담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임원진들이 '지점 순방'으로 위장해 구조조정 명단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일부 직원들은 임원들의 순방에 반발하는 모습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씨티은행 노조 관계자는 "사측이 영업점 지점장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묻는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내부 분위기를 감안해 인사부가 직접 해당 영업부를 방문 중이다. 이 때문에 은행 전체 분위기가 싸늘하다"고 불편한 속내를 전했다.
 
SC제일은행 /사진=머니위크DB


◆외국계은행마다 구조조정 '칼바람'

구조조정 바람이 부는 곳은 씨티은행뿐만이 아니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도 지점 축소에 나서고 있다. 사실상 국내 대표적인 외국계은행 두곳 모두가 군살빼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다만 SC은행은 씨티은행과는 다르게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지점 축소규모를 당초 최대 100개에서 50개 수준으로 줄인 것. 구조조정도 일단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폐쇄대상이 된 점포 직원들은 희망점포로 재배치하거나 세일즈 인력으로 활용키로 했다.

이처럼 SC은행이 지점축소 정책을 변경한 것은 노조와의 마찰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다. SC은행 노조는 지난 2011년 6월27일부터 8월26일까지 두 달간 사상 최장기 파업을 벌여 사측을 압박한 바 있다. 여기에 최근 리차드 힐 행장 후임으로 아제이 칸왈 행장이 선임되면서 취임 초기부터 노조와의 마찰을 피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외국계은행들이 지점축소 및 구조조정을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익저하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SC은행과 씨티은행은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61%씩 감소한 1779억원, 773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 전체 18개 은행의 이익감소율(53.7%)보다 높은 수치다.

또 그룹 본사의 경영전략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미국 씨티그룹은 올 1월 "한국에서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의 지점을 감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존 거스파치 씨티그룹 최고채무책임자는 "올해 안으로 한국지점의 구조조정을 본격화할 계획이며 연말에 감축 관련비용을 공개하겠다"고 강조했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씨티그룹의 3분기 아시아지역 소비자금융 매출은 1년 전에 비해 2% 줄었고 아시아지역 순익은 15% 감소했다.

SC은행도 마찬가지다. SC그룹은 지난해 11월 한국의 지점 수를 중장기적으로 약 25% 줄일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또 SC캐피탈과 SC저축은행은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국계은행들이 그동안 개인보다는 기업과 자산가 위주로 영업을 해왔는데 금융환경 악화로 이마저도 수익을 못내는 것 같다"면서 "그 결과 넘쳐나는 지점과 인력을 줄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