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호명산. 호랑이 울음소리가 잦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514m 정상에 오르면 백두산 천지를 연상케 하는 호명호수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면적 15만㎡, 267만톤의 대규모 저수지다.
호수 한 가운데엔 마치 수호신처럼 거북이 모형이 떠 있다. 길이 18m, 폭 10m 규모다. 이는 태양광으로 5.2kW의 전기를 생산하는 친환경발전소다. 놀라운 사실은 이 저수지가 인공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호명산 정상 아래를 보면 산자락 사이에 드넓은 청평호수가 멋진 장관을 뽐낸다. 무려 2억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규모다.
호명호수와 청평호수는 맑은 공기와 그림 같은 절경이 전부가 아니다.
핵심역할은 따로 있다. 전기 생산이다. 상부저수지(호명호수)과 하부저수지(청평호수) 사이 해발 -10.0미터의 지하발전소가 연결돼 있다.
양수발전을 통해 상부저수지 물을 하부저수지로 낙하하거나 위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것. 운동에너지를 이용한 것이다. 특히 2011년 9월 대정전 사태 이후 양수발전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른바 제2의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할 경우 원자력발전소에 전기를 공급하고 수도권 지역에 비상전기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한국전력의 불쏘시개 역할 뿐 아니라 전력을 생산, 저장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춘 것. 그렇다면 청평양수발전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한국전력의 불쏘시개 역할은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청평양수발전소를 찾았다.
해발 514m 정상에 있는 호명호수는 면적 15만㎡ 267만톤의 대규모 저수지다. 우측에 거북선 모양의 태양광 친환경발전소가 보인다. /사진=류승희 기자
◆거대한 설비규모·기술력에 감탄… 안전사고 '돈 워리'
산 위에 있는 물과 산 아래 있는 물을 연결해 전기를 만든다고? 도대체 어떤 원리일까. 서울에서 가평까지 당일출장 부담보다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 더 관심이 쏠렸다.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지난 7일 오전 11시 청평양수발전소 측에 현장방문을 요청했다.
청평양수발전소는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 거리. 기자는 그동안 수없이 가평을 오갔음에도 이처럼 거대한 양수발전소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왠지 그동안 헛 여행만 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현장을 본 순간 거대한 양수발전소가 산속에 있는 것에 한번 놀라고, 양수발전소의 거대한 기술력과 규모에 또 한번 감탄사가 절로 터져나왔다. 보안도 철저했다. 경비소와 양수발전소 사무실 및 발전기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는 무려 2.2km. 발전소 초입에 차를 세워달라고 수신호를 한 경비원이 기자의 얼굴과 신분증을 꼼꼼히 확인한 후 방문증을 줬다.
현장에서 마주친 직원들은 저마다 자신의 업무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한 직원은 "지금은 전기수요가 많은 시기여서 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라며 "혹시 생길 수 있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다들 긴장한 채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기소모량은 겨울보다 여름철에 수배 이상 많다. 에어컨 가동 때문이다.
박병운 발전팀장은 "상부저수지와 하부저수지를 잇는 발전기를 보여주겠다"며 무려 1332m에 달하는 긴 터널로 기자를 안내했다. 이날은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날씨였는데 지하터널 초입에서 자동차에 탑승한 또 다른 직원이 차량 실내 에어컨을 껐다.
더 깊은 지하로 들어가자 거짓말처럼 서늘한 찬 공기가 기자의 몸을 감쌌다. 박 팀장은 "이곳 실내온도는 15~16도"라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설명했다.
이곳엔 설비용량 20만kW 발전기 2대가 설치돼 있다. 이 중 발전기 2호는 7월16일 준공됐다.
발전기의 역할은 전기를 생산하는 데 있다. 상부저수지에서 초당 105톤의 물이 떨어지면 맨 아래쪽에 설치된 펌프수차를 돌리고, 이것이 발전전동기를 가동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직원들의 안전사고 위험은 없을까. 기계를 다루는 일이라 100%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연간 사고율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게 박 팀장의 설명이다.
중앙컨트롤타워실 양수발전 이상유무를 24시간 감시하는 곳이다 . /사진=류승희 기자
작업자들이 기계에 이상이 없는지 실시간 검사 중이다. /사진=류승희 기자
◆잉여전기 매매… 위기 시 전력공급의 불쏘시개
양수발전소는 전력수요가 적은 심야에 한국전력에서 남은 전기를 싼 값에 사들여 간접적으로 저장한 뒤 전력수요가 급증한 오후 시간에 다시 한전에 수수료를 얹어 공급한다.
박 팀장은 "전기는 기본적으로 저장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쓰다가 남은 잉여전기는 모두 소멸시킬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양수발전소는 이런 전기를 간접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일종의 전기저장창고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는 청평양수발전소를 포함해 양양·예천·청송·무주·삼량진·산청양수발전소 등 전국에 총 7개의 양수발전소가 있다. 모두 한국수력원자력 산하 회사다. 총 설비용량은 4700만kW로 원자력발전소 5기의 용량과 맞먹는다. 또한 우리나라 전체 발전 설비용량의 5.7%를 차지한다.
전력수요 피크 시 상부저수지에 저장된 물을 떨어뜨려 3분 만에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정지상태에서 가동에 이르기까지 원자력은 40시간, 석탄화력은 14시간, LNG복합화력은 2시간이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기술력과 효율성이 어떤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양수발전소는 외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게 특징이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공급이 중단될 경우 양수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으로 인근 대용량 발전소가 가동될 수 있도록 돕는 '불쏘시개' 역할을 맡는다. 이 때문에 '3분 대기조'로 불리기도 한다.
"청평은 평택복합화력발전소의 수호신"
[인터뷰] 설동욱 한국수력원자력 청평양수발전소장
-청평양수발전소의 주요 업무는
▶전국에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경우 전력 생산을 통해 남부지역의 평택복합화력발전소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복합화력발전소는 대규모 정전시 외부에서 전력을 공급해야 가동될 수 있어서다. 양수발전소는 대규모 정전 발생시 지역별로 시송전 역할을 담당하는 양수발전소 및 수력발전소가 지정돼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남부지역을 맡아 전력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양수발전 역할은?
▶전기는 낮에 소비가 많고 밤이 되면 줄어든다. 특히 심야시간대에는 공급량이 수요량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기저부하를 담당하는 대형 석탄화력, 원전 등 발전량을 줄이거나 정지시켜야 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 요소가 존재한다. 이럴 때 양수발전은 남는 전기를 싼 값에 사들여 전력수요가 많은 낮 시간대 다시 되파는 역할을 한다.
-전력비상시 고장날 가능성은 없는지?
▶모든 설비는 언제든지 고장이 날 수 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발전기 고장을 최소화할 것인가는 발전소 운영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전력설비를 관리하고 있는 모든 발전소는 다양한 고장예방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자체 계획에 따라 분야별(전기, 기계, 제어) 일일, 월별, 분기별 설비점검을 하고 있으며, 특히 전력피크기간에는 전력수급 대책상황실을 운영해 고장발생시 신속한 대처가 이뤄 질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
-양수발전소의 특징은?
▶전기는 일정한 주파수가 유지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도체 및 자동차 등 대규모 공장들은 균일한 제품 생산이 불가능해 품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 전기의 평상시 주파수는 60±0.2㎐ 정도다. 이를 유지해야 고품질 전기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매 순간 전력 수요량과 공급량이 일치해야만 한다. 전력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게 되면, 최악의 경우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양수발전은 순간 순간 공급량을 조절해 전력수요의 피크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양수발전은 정지 상태에서 최대 출력에 도달하는 시간이 불과 3분~5분에 불과하다. 따라서 돌발적인 사고 등으로 갑작스런 부하 변동시,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커다란 장점이다.
-우리나라 양수발전소의 대외경쟁력 수준은?
▶양수발전소 건설을 위한 기술수준은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댐 설계 및 시공 분야는 100%의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양수발전기 제작 및 시공을 위한 핵심기술은 선진국 대비 81.6%의 수준을 확보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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