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지냈냐? 한 10년 만인가. 완전 아저씨 아줌마가 다 됐네."
"사돈 남 말 하네. 네가 제일 늙어 보여."

지난 7월19일 서울 종로 피맛골에 위치한 한 선술집. 이곳에서 우리는 초등학교 동창모임을 가졌다. 열댓명이 모인 우리들은 종로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기에 자연스레 이곳을 모임장소로 정했다.


 
과거의 피맛골 골목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25년이 흐른 시간. 이제는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앞둔 30대 후반이 된 우리들은 서로 근황을 물어보다 자연스레 옛 종로에 대한 추억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대부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도 이곳에서 나왔기에 누구보다 이곳 지리에 익숙했고 대학 진학 또는 사회에 나온 이후에도 우리는 이곳에 모여 추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피맛골은 우리가 나이를 먹으며 변한 만큼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많던 빈대떡과 생선구이, 낙지집 등 맛집들은 뿔뿔이 흩어졌거나 사라졌고 골목과 골목 사이에 숨어있던 작은 주막집들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서너 사람이 앉으면 꽉 차는 쪽방 카페에서 기타 치며 목 놓아 노래 부르던 가객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한 안타까움인지 혹은 그리움인지 친구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뱉어냈다.

"야, 우리 예전에 자주 가던 서린낙지집 사라졌더라. 매운 게 먹고 싶어서 집사람이랑 왔더니 없어졌어." 몇년 동안 회사 일 때문에 외국에 나가있었던 친구가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말을 꺼냈다. "거기 오래 전에 옮겼어. 종로쪽 대로변으로 나가면 르메이에르라는 큰 오피스빌딩으로." 한 친구가 대답해 줬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 있던 가게 중 80%는 다른 곳으로 이사 가거나 없어졌어. 네가 찾는 가게도 그렇고 우리 술 먹다 동 트면 가던 청진옥 해장국집도 그쪽 건물로 옮겼더라. 그런데 다들 예전 같지는 않아. 뭐랄까 큰 빌딩 안으로 들어가니 분위기가 변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맛도 예전 같지 않고 가격도 비싸졌더라."

이 친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친구들은 자신이 찾은 (자리를 옮겨간) 피맛골에 있던 가게들에 대한 위치설명과 변화를 이야기했다. 두 딸을 둔 여자 동창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게를 우리에게 설명했다. "우리 애 아빠 회사가 서대문에 있는데 우리 예전에 먹던 로타리소곱창집은 그쪽으로 옮겼더라. 그래도 거긴 별로 변했다는 느낌은 없었어. 더 깔끔해지고 나름 맛도 큰 차이는 없는 것 같고."

다른 친구들도 "어느 집은 없어졌더라.", "그 집은 인근으로 옮겼더라" 등등 서로가 알고 있는 피맛골 맛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랬다.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간직한 피맛골의 추억은 이제 더 이상 피맛골에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몇몇 가게들은 아직 피맛골에 위치해 있지만 옛 추억을 되살리기엔 너무 많은 변화가 생겼다.


SC제일은행에서 조계사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에 있던 작은 식당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제일은행 옆의 한일관도 70여년간의 강북시대를 마감했다. 한일관은 1980년대까지 종로점과 명동점을 거느리며 외식업계를 호령했고, 나이 지긋한 노년층과 일본 관광객들이 애용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청진동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본점격인 종로점이 문을 닫고 강남구 신사동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 옆 블록 청진동길 주변에 위치한 가게들도 사라졌다. 청진동 해장국의 원조인 청진옥이 청진동지구에서 가장 먼저 재개발된 르메이에르빌딩 1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교보빌딩과 정보통신부의 뒤편 종각천 길에 늘어서 있던 이남장과 미진, 안성또순이네 등도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특히 피맛골의 대표음식으로 유명했던 낙지집들은 이제 몇곳 남지 않았다. 피맛골 낙지의 유례(?)는 한때 '무교동 낙지'로 불리며 서울의 대표 맛집으로 인기를 끌었던 서린낙지가 이곳으로 이사오며 시작됐다. 이후 서린낙지 맞은편에 이강순실비집이 생겼고, 이곳이 1980년대 후반부터 낙지골목의 슈퍼스타로 떠오르면서 일대는 '낙지골목'이라는 새로운 판도를 형성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피맛골 낙지의 원조였던 '실비집' '원조 할머니'가 돌아오며 낙지골목은 전성기를 맞았다. 실비집은 종로구청 길에 '낙지센터'로 새롭게 간판을 달면서 종로구청길 낙지 시대의 막을 올렸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무리 유명한 가게도 재개발이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것. 결국 서린낙지는 르메이에르빌딩으로 들어갔고, 이강순실비집은 피맛골을 떠나 무교동으로 이사했다.

수많은 명물가게, 많은 사람들이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피맛골. 건물이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서 옛 것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많은 것들이 변했다. 사라지는 피맛골의 옛 추억은 서울시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 피맛골에 대형 현대식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예전 샐러리맨들의 애환과 함께했던 추억들이 다시금 그리워진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