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머니투데이 DB

"좀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이러다 정말 제주도가 중국 땅이 돼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최근 중국에 다녀온 지인은 제주도가 중국 같고, 중국이 대한민국 같다고 하더라고요." (제주도에 거주하는 김모씨(38)).
왕서방의 첫번째 습격지는 제주도다. 최근 제주도 내 중국인 소유지가 증가추세라는 지적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주도 내 중국인의 토지 점유상황은 현재 제주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제주도에서 중국인이 점유한 토지는 지난 2009년 2만㎡에서 올해 6월 기준 592만2000㎡로 급증했다. 공시지가 기준으로는 4억원에서 5807억원으로 무려 1450배나 증가했다.


중국인의 제주도 점령은 최근 들어 점점 속도가 붙고 있다. 올 상반기 중국인의 토지취득은 277만3000㎡로 지난해 전체 취득분인 122만㎡의 2배를 넘어섰다. 이 같은 추세라면 제주도 내에서 중국인이 취득한 누적 토지면적이 올해 안에 700만㎡를 돌파할 것이라는 게 제주특별자치도의 예상이다. 이는 여의도 면적(290만㎡)의 2배를 넘는 규모다.

중국인 소유의 토지면적이 급격히 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2010년부터다. 지난 2010년 도입한 '부동산 투자이민제'가 중국인 자금유입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올해로 도입한 지 5년째를 맞은 부동산 투자이민제는 외국인 투자 유인책의 일환으로, 법무부 장관이 고시한 지역의 부동산에 기준금액 이상을 투자한 외국인에게 국내 거주자격과 영주권(5년 후)을 주는 제도다.

현재 국내에서 부동산 투자이민제를 도입한 지역은 제주도와 강원도 평창(알펜시아), 인천 영동지구, 전남 여수, 부산 해운대·동부산관광단지 등 6곳이다. 이 중 제주도는 상당한 투자유치효과를 거뒀지만 그외 지역은 아직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제주도의 부동산 투자이민제는 오는 2018년 4월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희국 의원(새누리당)은 "제주도 내 중국인의 토지소유가 2010년 부동산 투자이민제 도입 후 단기간 내에 이뤄진 만큼 편법적 농지소유·난개발 등을 살피지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현시점에서 순기능과 역기능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홍익대학교 부근 상가 /사진=류승희 기자
서울 신라면세점 /사진=류승희 기자

◆투자이민제 '두 얼굴'… 경제 활성화 카드 vs 부동산 버블
투자이민제는 미국과 호주, 아시아 국가로는 홍콩, 싱가포르도 시행하는 제도다. 다만 이들 국가의 투자이민제도는 부동산을 주요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내 투자이민제와 차이가 있다. 신생기업에 대한 투자를 포함하는 사업투자와 주식의 지분투자 등을 대상으로 삼으면서 일부 부동산에 대한 투자도 그 허용범위에 포함하는 방식이다.
이 중에서도 대한민국과 가장 흡사한 홍콩의 사례를 살펴보자. 홍콩정부는 지난 2003년 부동산 및 채권에 일정금액 이상을 투자한 외국인에게 홍콩 영주권을 주는 투자이민제를 시행했다. 외국인의 부동산투자 활성화로 투자자본유치 등 그 효과가 확실히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홍콩은 2008년 이후 1만5500명의 중국인이 홍콩 영주권을 취득했고, 이를 통해 590억위안(10조182억원)을 유치했다.

하지만 부동산가격이 과열양상을 보이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홍콩정부는 지난 2010년부터 부동산투자에 대한 투자이민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이처럼 해외 주요국들이 부동산 투자이민제에 대해 신중한 이유는 부동산 분야가 다른 산업에 비해 경제활성화 측면에서 큰 강점을 갖지 못하는 데다, 부동산경기 과열이나 난개발을 통한 자연환경의 파괴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제주도 투자이민제에 대한 우려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송인호 KDI(한국개발연구원) 박사는 "부동산 투자이민제는 외자유치나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지만 무조건 좋은 제도인지는 다양한 방면에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송 박사는 '어떤 돈을 누구로부터 유치하는지'에 대한 스크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금의 성격과 출처는 전혀 모른 채 영주권을 주고 투자유치를 받으면 추후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좋은 사람이 좋은 목적으로 투자하면 막을 이유가 없다"면서도 "꼼꼼한 스크린 절차를 마련해 무분별한 투기적 자본이 부동산시장에 유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제주도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규제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1인당 투자금액을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상향조정하거나 투자자 수를 도내 인구의 1% 수준인 6000명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투자이민 총량제나 채권 매입 등 금융투자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는 '2018년 일몰제가 있으니 그때 살펴보자'는 입장인데 국가신용도와도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이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내륙으로도 뻗치는 왕서방의 '손길'


"왕서방의 습격이요? 비단 제주도뿐만이 아니에요. 이곳저곳 관광객이 몰리는 지역마다 중국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요." (서울 홍익대 인근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
제주도는 시작에 불과했다. 왕서방의 손길이 이제 수도권 등 주요 도시로도 뻗치고 있다. 특히 서울의 홍대와 경리단길 등 중국관광객이 몰리는 지역에서는 상가 등 수익형부동산마저 중국인들이 매입해 면세점 등을 오픈하거나 임대사업을 벌이고 있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다는 B씨는 "중국인들이 자주 찾는 인기 블로그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홍대 근처에 세입자를 구한다는 광고가 많아지고 있다"며 "한국 대학가에 집을 매입해 유학생들에게 임대하는 중국인 지인에게 물어보니 중국보다 한국의 수익률이 더 높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분명 홍대는 부동산 투자이민제 구역이 아닌 만큼 특별한 혜택이 없다. 하지만 중국인여행객과 유학생들이 많아 임대사업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게 B씨의 설명이다. 실제로 중국의 경우 2011년 기준 난징시 중심에 위치한 40평대 복층아파트의 월 임대료가 한화로 50만원선인데 비해 홍대는 방 한칸(4~5평)에 보증금 500만원-월세 20만원, 12평 반지하도 보증금 500만원-월세 45만원 수준이다. 중국보다 한국에서 임대사업을 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홍대 등 내륙의 주요도시로 들어오는 자금의 성격이 제주도로 유입되는 자금과 다른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주도로 유입되는 중국자본이 투자이민제와 영주권 등을 목적으로 한 토지매입에 집중됐다면 홍대 등 내륙으로 들어오는 자본은 그야말로 투자성 자본이라는 것.

송인호 박사는 "중국인들이 제주도로 들어와 돈을 번 것을 1차적인 측면이라고 한다면 번 돈을 갖고 홍대 등 내륙으로 진출하는 것을 2차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며 "2차적인 부분은 데이터로도 쉽게 잡히지 않고 스크린도 어려워 더욱 위험하다"고 말했다. 영주권을 얻은 뒤 이어지는 투자에 대해서는 어떤 제재도 할 수 없어 그만큼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홍대에 진출한 왕서방의 등살에 중국관광객을 겨냥한 국내 업체들의 매출은 점차 감소하고, 기대했던 고용창출 효과도 미미하다. 중국관광객은 자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을 선호하고, 상점의 주인은 중국어가 가능하면서 인건비도 저렴한 조선족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어서다.

이에 대해 송 박사는 "수익형부동산 등을 통한 중국인들의 사업은 내국인을 위한 사업이라기보다는 중국 자국민을 위한 것"이라며 "국내에서 소비행태가 일어나는 것 자체는 그 물건자체가 중국물건이 아닌 이상 선순환적인 구조지만 중국인 상권자체가 국내 상권을 잠식할 가능성도 농후하다"고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인천 차이나타운 /사진=머니투데이 DB

◆왕서방의 습격은 앞으로도 '쭉'


일명 '요우커'로 불리는 중국인관광객이 급증하는 추세여서 왕서방의 부동산 습격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에 따른 부동산 버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는 상황이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장은 "중국인들의 투자는 제주도를 비롯해 관광객이 몰리는 인기지역을 중심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아파트나 상가, 오피스텔, 호텔 등 상품의 다양화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자본이 상권을 잠식하는 경우 순차적이기보다 기습적인 임대료 상승이 우려된다"며 "투자와 투기의 경계선에서 투기로 인한 부동산시장의 혼란도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물론 부동산 버블에 대한 우려는 아직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국내 부동산시장과 상가시장이 침체일로를 걷고 있어 내륙으로의 중국자금 유입은 당분간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있어서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뚜렷한 통계가 나오지 않은 만큼 중국자본의 투자로 인한 국내부동산 버블을 우려할 수준인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이른 감이 있지만 지역경제 활성화 등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단순한 투자성 자본이 유입되는 것은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외국인 투자유치가 당초 취지에 맞게 경제 활성화의 초석을 다질 수 있도록 합리적인 기준과 원칙마련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왕서방의 습격에 잔뜩 긴장하고 있는 국내 부동산시장. 향후 어떤 과정을 겪게 될지 예의 주시해볼 일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