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박세라씨(31)는 스킨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화장품가게에 들렀다가 립스틱 판매대 앞에 멈춰섰다. '자신만만한 핑크', '욕심나는 핑크', '두근거리는 핑크', '놀란 핑크', '아찔한 핑크' 등 독특한 핑크 립스틱의 제품명이 박씨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 박씨는 한바탕 웃은 뒤 이내 핑크 립스틱 2개를 집어 들었다. 박씨는 "립스틱을 구매할 생각이 없었는데 어느새 이 립스틱을 바르고 두근거리거나 아찔해지는 상상을 하고 있더라"며 "어감만으로도 색감을 연상할 수 있어 구매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제품이름 하나가 '구매'와 '비구매'를 가르는 절대선이 되기도 한다. 분위기에 안 맞거나 딱딱한 이름 때문에 시장에서 외면 받는 제품이 있는가 하면 이름 하나 잘 지어 대박을 터뜨리는 제품도 나온다.
◆잘 지어야 잘 팔린다
마케팅업계에 따르면 제품이름이 해당 브랜드인지도나 매출 증가에 미치는 효과는 약 30%. '잘 지은 이름은 강력한 마케팅효과를 발휘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제품이름은 이제 하나의 경쟁력이 됐다.
독특해서 눈길을 끌거나 제품의 특징을 재미있게 나타낸 이름은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기억에도 오래 남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다. 따라서 같은 업종, 비슷한 콘셉트 등 경쟁이 심한 시장일수록 '네이밍마케팅'에 신경 쓰는 경우가 많다. 단 한번이라도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 자사의 제품을 고객에게 알리기 위한 기업들의 마케팅 활동이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이유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속출하면서 업종별 네이밍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과거엔 어려운 외국어를 섞어 고급화 전략을 노린 이름이 인기였다면 최근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보단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이름이 트렌드가 됐다.
식음료업계는 최근 메뉴의 주재료나 콘셉트를 기발하게 풀어낸 '한글 네이밍'을 선호하는 추세다. 정식품의 '베지밀-과일이 꼭꼭 씹히는 애플망고 두유'는 두유음료와 함께 쫀뜩쫀뜩한 과일 알갱이를 씹는 재미를 제품명에 활용한 사례다. 풀무원 '바사삭 군만두'는 바삭한 식감을 선호하는 군만두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해 만든 제품이다.
제품의 특징을 담은 긴 이름을 사용하는 것 역시 식품 네이밍의 유행 포인트. 동원F&B의 '들기름향이 그윽한 양반김'을 비롯해 CJ제일제당 '하선정 100% 국내산 천일염으로 절여 아삭한 포기김치', 해찬들의 '파프리카가 들어가 덜 매운 태양초 골드 고추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네이밍은 음식의 특장점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고 소비자의 이해를 도와 경쟁력을 발휘한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네이밍마케팅에 '흠뻑'
화장품업계는 감성을 자극하는 이름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뷰티브랜드 맥은 립스틱에 '귀요미', '캔디얌얌' 등 러블리한 이름을 붙여 출시했고 이니스프리 역시 매니큐어에 '봄 햇살 유채', '단풍잎 길', '꽁꽁 언 호수', '안녕 병아리' 등 감성적인 제품명을 달아 눈길을 끌었다.
뷰티업계 한 관계자는 "외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감성자극이 화장품업계의 빠질 수 없는 네이밍 키워드"라며 "제품이름만 보고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랜차이즈업계는 코믹한 네이밍을 선보였다. 스쿨푸드는 기존 메뉴에 동화적 의인화법을 결합한 메뉴를 출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돼지왕구이어부밥'이 바로 그 메뉴다. 밥 위에 갈비를 올린 메뉴의 비주얼을 마치 갈비가 밥을 '어부바'한 모습으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는 두가지 베스트셀러 메뉴를 한 접시 안에 담아 맛볼 수 있는 메뉴에 '반바니아'라는 이국적인 이름을 붙여 콘셉트 네이밍을 시도했다.
불황 속 향수를 자극하는 '촌티 네이밍'도 인기다. 스몰비어(소형 맥주전문점) 콘셉트를 내세워 동네 맥줏집으로 자리 잡은 '봉구비어'와 '춘자비어', '봉쥬비어', '상구비어', '최군맥주' 등이 그 예다. 맥도날드도 복고풍의 네이밍을 시도했다. 두툼한 패티와 스모키한 소스로 1955년 미국의 햄버거 맛을 재현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1955버거'로 메뉴이름을 정했다.
네이밍을 데이와 연결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도 한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삼겹살데이(3월3일), 짜장면데이(4월4일), 빼빼로데이(11월11일) 외에도 삼치·참치데이(3월7일), 닭고기데이(9월9일), 한우데이(11월1일) 등 신종 데이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트렌디+뚝심형 조화 이뤄야
전문가들은 무조건 트렌디한 이름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오랜 전통과 마니아 고객을 가진 제품의 경우 섣불리 그 이름을 바꿨다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어서다. 애플의 아이폰, 아이패드 등에 '아이'가 빠지거나 오리온의 '초코파이'가 갑자기 다른 이름으로 바뀐다면 소비자들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한국브랜드마케팅협회 한 관계자는 "이 역시 잘 지은 이름 하나가 그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며 "그때그때 바뀌는 트렌디한 네이밍과 뚝심형 네이밍 전략이 적절히 맞물리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삼양식품 마케팅부문 관계자는 "네이밍은 소비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줄 때 더 돋보인다"며 "제품을 경험하기 전 소비자의 첫 시선을 사로잡는 네이밍 트렌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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