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사들의 실적이 늦가을 낙엽지듯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환율하락과 정제마진 감소로 ‘실적 악화의 늪’에서 쉽사리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앞길도 어둡다. 정유사들은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업구조 다변화를 제시하고 있지만 수익성이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정유사들의 엇갈린 성적표


지난해 말부터 급전직하한 정제마진의 약세와 국제유가 급락, 원화가치 상승은 국내 정유사들의 3분기 영업이익을 끌어내렸다. 세계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석유제품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의 셰일에너지 생산과 중동의 원유 증산으로 공급이 늘면서 정유사들의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다만 SK이노베이션과 현대오일뱅크만 선방했다는 평가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3분기에 영업이익 48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분기보다 913억원 늘어난 흑자전환이다. 하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실적이 85% 급감했다. 매출의 70%가량을 차지하는 석유사업에서는 2261억원의 영업손실을 거뒀다. 그래도 실적 부진에 빠진 다른 동종업체에 비해서는 나은 성적표를 받았다.


 

SK중국 우한 공장 전경 /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도 지난 3분기 영업이익 391억원을 올리며 전분기보다 2.6% 실적을 끌어 올렸다. 다만 14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또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대비 73% 줄었다. 하지만 현대오일뱅크는 9분기째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어 동종업계에서 가장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대로 GS칼텍스와 S-OIL의 3분기 성적은 참담했다. GS칼텍스는 영업손실 1646억원을 기록했다. 전분기에 이어 연속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나마 석유화학과 윤활유부문에서 각각 871억원과 62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손실을 줄였다. S-OIL 역시 39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연속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전분기에 비해 적자 폭이 줄어든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S-OIL은 석유화학과 윤활유부문에서 각각 796억원과 67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 같은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 부진은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이 지난 3분기 배럴당 1~3달러 수준에서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정유사별로 마케팅비용 등을 고려한 마진율에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정제마진이 4달러 이상이라야 이익이 남는다.

또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100달러 이상에서 형성되던 국제유가가 3분기 말 90달러 중반까지 급락한 것도 3분기 실적 부진의 요인이다. 지난 9월 초 두바이유는 배럴당 100.94달러에 거래됐다. 그러나 9월 말에는 94.9달러까지 떨어졌다. 원유를 사서 유조선에 싣고 이동하는 동안 배럴당 5달러 이상의 재고평가 손실이 발생했다.


/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선방 비결, 신규투자 축소·원가절감

SK이노베이션과 현대오일뱅크가 동종업계에서 그나마 선방한 반면, GS칼텍스와 S-OIL이 실적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석유개발사업과 원가절감 노력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정유부문 실적에 직결되는 정제마진 약세와 수요 감소, 환율 급등 양상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SK이노베이션과 현대오일뱅크는 비핵심사업 매각, 불요불급한 비용 축소, 원유 도입처 다변화 등 대책 마련에 몰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전세계 15개국의 22개 광구, 4개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를 통해 매일 7만1000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이 석유개발사업은 지난 2010년 3분기 이후 분기마다 1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유사업의 부진을 석유개발사업이 지탱하는 것. 석유개발사업은 정유사업이나 석유화학사업처럼 시황에 따른 등락이 비교적 적다. 또한 석유개발사업은 영업이익률이 정유사업이나 석유화학사업보다 높다. 신규 투자 축소, 해외 출장 자제 등 비용절감과 함께 SK유화 헬리오볼트 등 비핵심사업을 매각한 것도 SK이노베이션이 선방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현대오일뱅크가 정유업계에서 유일하게 흑자 기조를 이어갈 수 있었던 비결은 높은 고도화율과 원유 다변화를 통한 비용절감 등의 효과로 분석된다. 이 회사는 지난 9월 말 기준 하루 생산량 6만8000배럴 규모의 중질유 분해시설 등을 보유해 고도화율을 국내 최고 수준인 36.7%로 끌어올렸다. 고도화율이 36.7%라는 것은 원유 100%를 투입했을 때 휘발유, 경유, 등유 등 경질유를 36.7% 뽑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북해·남미 등으로 원유 도입처를 다변화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저렴한 초·중질원유 도입 등으로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면서 흑자를 견인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 상용유류저장시설 /사진제공=현대오일뱅크

◆설상가상 한·중 FTA ‘악재’

반면 GS칼텍스는 파라자일렌(PX) 마진 반등으로 석유화학사업의 이익을 대폭 늘렸다. 하지만 유가하락에 따른 재고손실이 발생하면서 정유사업의 적자가 4분기째 이어지고 있다. 영업손실을 크게 만회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대규모 환차손으로 순이익 적자폭이 2분기 378억원에서 3분기 1159억원으로 확대된 것도 손실규모를 키웠다.

업계 최저 수준인 S-OIL의 영업이익률은 원유 수급 경직성에서 비롯됐다. S-OIL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이자 63.4%의 지분을 보유한 아람코로부터 원유 전량을 들여온다. 아람코와 장기공급 계약을 맺은 상태라 유가급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 한푼이라도 싼값에 원유를 들여와야 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는데 오히려 아람코가 악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유사들은 최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면서 충격에 휩싸였다. 중국의 수요 확대 등을 노리고 파라자일렌 등에 대규모 시설투자를 했는데 해당 품목이 관세철폐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원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분해해 만드는 파라자일렌은 합성섬유와 페트병 등의 중간원료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파라자일렌 설비투자를 크게 늘린 것은 한·중 FTA로 중국시장 공략에 탄력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가 상당부분 반영된 것”이라며 “파라자일렌이 초민감 품목에 포함되면서 실익이 없어진 것은 물론 과잉설비에 따른 부담만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파라자일렌의 경우 수출물량의 90% 이상이 대중 수출용일 만큼 중국 의존도가 높은데 이번 FTA 협상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