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서 TV 리모컨을 돌리다 한 화면에서 시선이 멈춘다. 하염없이 화면을 보다 무언가에 홀린 듯 황급히 전화기를 찾아 번호를 누른다. 통상 소비자들이 TV홈쇼핑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순간이다. 물건 하나를 구매할 때마다 며칠을 고민하는 신중파들도 홈쇼핑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TV화면 속으로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홈쇼핑의 마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사은품을 준다거나 무이자할부 등 상품구성도 매력적이지만 단연 홈쇼핑의 주인공은 쇼호스트다. 특히 여성소비자가 많이 시청하는 TV홈쇼핑에는 공략비법이 남다른 스타 쇼호스트가 여럿 있다. 이들은 연간 수천억원 규모의 판매실적을 올리고 마치 연예인처럼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한다.


한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수화기를 들게 하는 그들의 비법은 무엇일까. '4000억원 판매' 신화의 주인공인 류재영 CJ오쇼핑 간판 쇼호스트를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CJ오쇼핑 본사에서 만났다.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부담스럽지 않은 '친숙함'

'여자보다 옷을 잘 파는 남자', '스타 쇼호스트', '조용한 카리스마' 등은 류재영 쇼호스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도대체 말을 얼마나 잘하면 스타 쇼호스트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풀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말 잘하는 쇼호스트가 아니었다.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지도 '아나운서식' 화법을 구사하지도 않는다.


"9전10기였어요. 쇼호스트 공채에 붙기까지 아홉번이나 떨어졌습니다. 10년 전쯤 쇼호스트가 길이 아닌가 싶어 잠깐 게스트를 한 적 있었어요. 그때 타사의 한 유명 쇼호스트였던 대선배가 제게 '쇼호스트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말하기도 했죠. 돌이켜보면 당시 남자 쇼호스트는 듬직한 이미지, 여자는 조신한 이미지로 틀에 박혀있었어요. 하지만 제 생김새와 말투가 워낙 친숙하잖아요.(웃음) 그런데 예상을 깨고 CJ오쇼핑에서 쇼호스트 활동 초반부터 대박행진을 이어갔죠."

10여년 전만 해도 홈쇼핑업계는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는 방법으로 정형화된 이미지를 추구했다. 그러나 류 쇼호스트는 소비자에게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친숙한 이미지를 고집했다. 이것이 그의 첫번째 비법이다.


◆화려한 수식보단 솔직함이 '대세'

그는 여성소비자들이 상품구매 전 후기를 많이 참고하는 점에 착안해 진솔한 상품평을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방송을 진행한다. 현재 진행하는 <아이 러브 레포츠>에서 소개하는 상품을 그가 직접 입어보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화면을 담는 이유다.

"한 아웃도어 의류브랜드를 직접 입고 활동하는 모습을 담은 촬영이 있는 날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더 이상 촬영이 어려운 상황이었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터였는데 상품에 발수기능이 있었던 게 떠올랐어요.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았지만 옷엔 비가 스며들지 않는 장면을 생생한 현장으로 담아낼 수 있었죠. 그 상품은 대박을 쳤고요."

이러한 노력은 여성소비자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소위 '리얼리티'를 강조한 후기를 보여주는 전략이 바로 그만의 비법인 셈. 어머니와 5명의 누나들도 그에게는 훌륭한 조력자였다. 상품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들을 수 있어서다.

철저한 시장조사와 제품사양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다. 예전에는 상품의 장점을 설명하며 매진임박을 외쳤다면 이젠 경험을 녹인 진실한 상품평에 소비자가 반응한다는 것.

"인테리어상품을 소개하는 <조희선의 홈스토리>에서 한 업체의 맞춤형 부엌가구를 판매한 적이 있어요. 마침 촬영 전 우리집 부엌을 그 업체의 제품으로 바꾼 후였죠. 어머니께 구매과정부터 후기까지 상세히 여쭤봤죠. 예컨대 '다리가 아프다고 하니 앉아서 조리할 공간을 만들어 주더라' 또는 '싱크대가 낮아지니 편하다' 그런 얘기였어요. 두꺼운 마케팅 책자에 나온 상품설명보다 체험에서 우러난 사소한 팁이 방송에서 큰 힘을 발휘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직접 입어보거나 체험하지 못한 여성의류를 여성보다 더 잘 파는 전략은 무엇일까. 류 쇼호스트는 이를 두고 "철저히 남성적인 시선으로 판매하기 때문"이라며 두번째 비법을 귀띔했다. 마치 옆에서 칭찬이나 조언해주는 남성의 눈으로 상품을 소개한다는 의미다.

"누구나 새 옷을 살 때 예뻐 보이고 싶죠.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남편이나 남자친구 혹은 아들 등 남성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남자 시선으로 솔직한 느낌을 말한달까요? 일례로 겨울용 두꺼운 부츠제품은 남자가 봤을 때 정말 안 예쁘다고 직접적으로 말해요. 또 식상한 설명보다는 소재비율이나 브랜드스토리 등 전문적인 정보를 많이 주려고 합니다. 같은 가격대라도 더욱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상품을 살 수 있단 걸 보여주기 위해서죠."

결국 류재영 쇼호스트의 여심 공략비법은 '공감'으로 압축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공감하거나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판매한다는 것. 소비자와의 신뢰는 공감에서 비롯된다는 게 그의 일관된 생각이다.

"당신은 어떤 쇼호스트가 되고 싶습니까. 면접볼 때마다 들었던 질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 대답은 같아요. 친구나 가족 같은 친근한 쇼호스트가 되는 것이죠."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