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행장은 정통 씨티맨이다. 한국씨티은행의 전신인 한미은행 시절부터 최근까지 13년간 부행장을 지내며 '경영승계 프로그램'을 차근차근 밟아온 '준비된 행장'이다. 그는 거센 폭풍이 몰아치는 개혁이 아닌 정중동의 변화를 예고했다.
◆'민원 없는 은행' 도전… 4S 경영 선포
박진회 행장이 취임 후 제시한 청사진에는 '화려한 목표'가 없다. '은행권 점유율 상승'이나 '매출증대'와 같은 성장주의 목표가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4S(smaller·simpler·safer·stronger) 경영'을 선포했다.
박 행장은 지난달 28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작지만 강한 은행, 편리하지만 안전한 은행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작게 가겠다'는 것은 축소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의미 없이 대형화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시중은행들과는 보완적인 경쟁을 강조했다. 그는 "4대 시중은행이 이미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한 상황에서 1대 1로 경쟁하기는 쉽지 않으며 시중은행들은 외환 및 채권거래 등에서 씨티은행의 고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소모적 경쟁 대신 기존 강점을 중심으로 지속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한 3대 핵심 분야는 기업금융과 자산관리, 카드사업이다. 우선 기업금융부문에서는 씨티은행의 글로벌 금융서비스를 통한 국내 대기업 및 해외 중소·중견기업 지원을 강화하고 자산관리와 카드사업부문에서는 고객층을 세분화해 맞춤형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처럼 내실경영을 선언한 한국씨티은행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민원 없는 은행'이다. 이는 단순히 민원이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박 행장은 "사전적인 상품 기획단계부터 사후서비스까지 민원 없는 은행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고객의 입장에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는 은행, 고객과의 신뢰를 지켜서 씨티은행과 거래하고 싶다는 마음을 주는 은행을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소매금융 철수설 등 위기 속 구원투수될까
대내외 여건은 녹록지 않다. 한국씨티은행의 국내 입지는 한껏 위축된 상황이다. 2004년 출범 당시 237개에 달했던 점포수는 지난 7월 현재 134개로 쪼그라들었다. 올해만 56개 지점이 통폐합됐고 650명의 직원이 한국씨티은행을 떠났다. 항간에 한국씨티은행의 소매금융 철수설이 솔솔 나오는 까닭이다.
그러나 위기 속에 기회가 찾아오는 법.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줄이고 조직을 정비한 만큼 추후 경영에 따라 재도약의 가능성이 있다.
박 행장은 한국씨티은행의 내년 성장을 최대 5%로 예상했다. 대출금의 경우 올해보다 3~5%, 예수금은 4~5%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박 행장은 "과도한 성장 추구 대신 지속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사내 분위기도 고무적이다. 노조는 박 행장 취임 전 소매금융 경험이 거의 없는 박 행장의 경력을 문제 삼아 행장 선임을 반대했으나 박 행장이 노조를 찾아 대화한 끝에 만 2일을 넘기지 않고 선임에 동의했다. 한 직원은 "행장 선임 시 노조의 반대는 통과의례 아니겠냐"며 "말단직원의 경조사까지 챙기는 다정다감한 리더인 박 행장의 취임을 직원들 상당수가 반기고 있다"고 전했다.
박 행장은 지난 10월28일 취임의 변을 대신해 직원들에게 한통의 이메일을 보낸 바 있다. 그가 좋아하는,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로 여기는 논어의 구절을 소개했다. '진선진미'(盡善盡美). 선을 다하고 미를 다한다는 글귀다.
"목표의 올바름을 선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라 합니다. 제가 금융인 30년을 살아오면서 이 구절을 읽었을 때 금융인의 좌우명에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 공동의 목표로 같이 가면 멀리 오래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기다리겠습니다."
과연 한국씨티은행에서 두번째로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박 행장이 직원의 마음을 얻고 고객의 신뢰를 얻어 제2의 도약을 향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 금융권이 주목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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