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3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등 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은 쌍용차의 손을 들어줬다. 쌍용차는 지난 2009년 경영난으로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면서 자구계획 차원에서 2646명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앞서 2004년 5909억원이라는 헐값에 쌍용차를 인수한 중국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차의 가솔린 기술과 운영노하우를 빼먹고 유유히 발을 뺐다. 이른바 ‘쌍용차 사태’다.

현재 국내 5개 완성차 회사 가운데 현대·기아자동차를 제외한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한국지엠 등 3사는 외국계다. 프랑스 르노, 인도 마힌드라그룹,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각각 그 주인이다. 외국계 자본유입에는 분명 장·단점이 있지만 ‘쌍용차 사태’와 같은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머니위크>는 세 자동차기업이 외국계 자본에 팔린 이유를 알아보고 ‘제2의 쌍용차 사태’의 위험성은 없는지 짚어본다.
/사진=뉴스1

‘SUV 시대’라고 불리는 요즘에도 국내 자동차 마니아들은 코란도와 무쏘를 최고의 SUV로 기억한다.


◆'드럼통 차'에서 쌍용차까지

국내 최고의 SUV를 생산한 것으로 평가받는 쌍용차는 지난 1954년 설립된 하동환자동차제작소로부터 시작됐다. 6·25 전쟁 후 미군트럭에 드럼통 소재를 넣어 버스로 만들며 시작한 회사다. 이후 1972년 이 회사는 동아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하고 경기도 평택에 99만㎡(30만 평) 규모의 부지에 공장을 건설했다. 지난해 12월 해고노동자들이 굴뚝에 올랐던 쌍용차 생산 공장이다.

지난 1984년 동아자동차는 4륜구동 자동차 전문회사 거화를 인수했다. 당시 재계 5위의 쌍용그룹은 동아자동차의 발전 가능성을 간파하고 인수에 나서 자동차산업 진입에 성공했다. 지난 1988년, 쌍용차는 그렇게 탄생했다.


◆‘SUV 명가’ 이름 날린 쌍용차

쌍용차는 설립 직후 적극적인 신차개발에 나서며 시장점유율을 확대했다. 특히 코란도와 무쏘 등이 SUV시장을 장악하며 현대차와 기아차를 위협할 만한 회사로 성장했다.

또한 쌍용차는 메르세데스-벤츠와 기술제휴를 맺고 출시하는 차량에 벤츠 엔진을 탑재했다. 독일 명차의 기술력을 통해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의지였다. 벤츠와의 협업은 SUV뿐 아니라 고급 세단 ‘체어맨’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재계 5위의 쌍용그룹도 자동차산업에서의 이런 과감한 투자와 신차개발을 감당하지 못했다. 지난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로 그룹 전체가 흔들릴 위기에 처하자 쌍용그룹은 자동차산업에서 발을 빼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쌍용차는 11년 만에 대우그룹에 팔렸다.

하지만 쌍용차를 인수한 대우그룹은 1999년 해체됐고 쌍용차는 다른 대우그룹 계열사와 함께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대우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조흥은행은 매각을 추진했고, 결국 지난 2004년 쌍용차는 상하이자동차에 팔리고 말았다.

상하이차에 매각되기 전까지 쌍용차는 경영 정상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특히 이 시기에 출시된 ‘렉스턴’과 ‘무쏘 스포츠’가 큰 인기를 끌며 ‘SUV 명가’라는 타이틀을 이어갔다. 1999년에는 국내 SUV시장에서 59%의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였다.

◆몰락 불러온 ‘쌍용차 사태’

이러한 상승세도 잠시, 상하이차에 매각된 이후 쌍용차는 다시 침몰하기 시작했다. 액티언, 로디우스 등 신차가 모두 판매부진을 겪었다. 이어 지난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자 상하이차는 2009년 서울중앙지법 파산4부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인수 5년 만에 쌍용차를 포기한 것이다. 업계 안팎에선 ‘상하이차가 쌍용의 기술만 빼가고 회사를 버렸다’는 ‘먹튀’ 논란도 불거졌다.

법정관리에 돌입한 쌍용차에는 박영태 상무와 현대차 사장 출신인 이유일 현 쌍용차 사장이 쌍용차의 공동 관리인으로 선정됐다. 이들은 기업 가치 산정 및 구조조정안을 마련했고 노조는 이러한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구조조정 결과 2646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1904여명이 희망퇴직자, 455명은 무급휴직자로 분류됐으며 끝까지 이를 거부한 159명은 정리해고 처리됐다. 8·6노사합의를 통해 쌍용차는 경영정상화 과정에서 무급휴직자, 희망퇴직자의 순서로 복직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티볼리’ 흥행 노리는 쌍용차

지난 2010년 법정관리 기업인 쌍용차를 인수한 인도의 마힌드라는 쌍용차의 신차 개발 및 생산 등에 자율성을 보장했다. 르노삼성과 한국지엠이 각각 판매·생산기지화 되고 있다는 비판에 휩싸인 것을 감안하면 긍정적이다. 이로 인해 쌍용차는 지난 2013년까지 성장을 거듭해왔고 지난해도 수출부진을 겪었지만 괄목할 만한 내수성장을 이뤘다.

쌍용차는 현재 4년 만의 신차 ‘티볼리’ 출시를 앞두고 있다. 쌍용차가 선택한 회생카드는 역시 SUV였다. 대신 차급을 줄여 ‘10만대’ 이상 판매할 수 있는 차량을 만들었다. 최근 ‘대세’로 떠오른 B세그먼트 급의 차량이다.

◆희망퇴직자에 희망고문

하지만 노동자들의 복직문제는 지지부진했다. 8·6합의에 의해 가장 먼저 복직하기로 된 455명의 무급휴직자가 전원복직 되기까지는 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당초 1년 후 복직될거라 여겼던 무급휴직자들은 합의문을 놓고 법정공방에 나서 1심에서 승리했지만 항소심에선 사측의 대응이 문제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티볼리는 쌍용차에 경영정상화를 위한 핵심카드이자 1904명의 희망퇴직자의 복직을 위한 유일한 희망이다. 그래서인지 티볼리는 출시 전부터 모든 이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 이유일 사장은 지난해 10월 파리모터쇼에서 “X100(티볼리 프로젝트명)이 연간 10만~12만대 생산된다면 희망퇴직자에 대한 복직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쌍용차가 희망퇴직자들의 복직을 볼모로 마케팅을 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발언의 여파는 컸다. 쌍용차가 티볼리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이목은 집중됐고 희망퇴직자들의 희망도 커졌다. 하지만 쌍용차 측은 “희망퇴직자 복직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경영정상화’를 통해 일자리가 창출되면 그때 복직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6년째 해결되지 않은 복직문제로 고통에 시달리는 희망퇴직자들에게는 답답할 노릇이다. 쌍용차의 희망퇴직자인 김모씨(52)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무급휴직자가 복직하는 데 4년이 걸렸는데 1900명이 넘는 희망퇴직자는 언제 복귀되겠냐”며 “기업정상화가 되면 받아주겠다는 말만 되풀이 하지 말고 구체적인 계획을 알려줘야 우리도 삶의 계획을 세울 것 아니겠냐”고 토로했다.

수익성 악화와 외부적 문제로 지금의 상황에 이른 쌍용차가 희망퇴직자들의 복직을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기업정상화와 수익성 개선의 연장선에 희망퇴직자들을 고려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있다. 언젠가는 복직시킬 것이라는 ‘공수표’를 남발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인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