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산업화·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우리나라의 고가도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들어 고가도로를 꾸준히 철거하는 중이다. 남아있는 고가도로도 철거될 가능성이 높다. 설치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며 노후화된 데다 지하철 건설공사에 장애를 일으키고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평가도 나온다.


심지어 고가도로 건설의 최대 목적이었던 교통량 해소라는 취지도 사라진 경우가 많다. 도심환경이 변화하자 고가도로가 되레 교통흐름을 방해하는 주범으로 몰린 것이다. 근대화의 상징은 시간과 함께 어둡고 지저분한 천덕꾸러기로 변모했다.

이 같은 모습은 해외도 다르지 않다. 우리보다 먼저 산업화·근대화를 이룬 해외 각국들도 다양한 고가도로를 건설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계 각지에서도 고가도로가 산업화의 보기 흉한 유산으로 전락한 경우가 종종 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고가도로, 우리보다 먼저 산업화를 이룬 나라들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 위험한 ‘흉물’ 치우고 도심 경관 꾸며


지난 1953년 미국의 시애틀 도심부의 엘리어트만에 2개 층으로 된 차량전용도로가 개설됐다. ‘알래스카고가도로’(Alaskan Way Viaduct)다. 알래스카고가도로는 시애틀 도심부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차량 통행로다. 하지만 건설 이후 10년도 채 되지 않아 철거 여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도심 한가운데 놓인 터라 미관상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소음과 매연도 골칫거리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다운타운과 워터프론트(수변공간)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긴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불만은 공론화되지 못했다. 중추적인 차량전용고가도로를 아무 대안 없이 제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알래스카고가도로를 철거하자는 여론이 힘을 얻은 것은 지난 2001년 2월부터다. 진도 6.8의 지진이 발생하며 고가도로의 붕괴 가능성이 제기된 것. 당시 워싱턴주 교통과가 1450만달러(약 159억원)를 들여 긴급 보강공사를 했지만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문제는 하루에 10만대가 넘는 통행량을 기록하는 고가도로를 대신할 대안이 없다는 점. 이후 10여년간 시애틀시는 대안을 찾아 고심했고 결국 지하터널을 선택했다. 시애틀시는 오는 2016년 완공을 목표로 2개 층으로 구성된 4차선 도로를 3.2km에 이르는 규모로 건설 중이다.

다만 아직까지 알래스카고가도로는 철거되지 않았다. 시애틀시는 지하터널 공사를 진행하며 당분간 대체재로서 고가도로를 유지하고 보수에도 전념한다는 복안이다.

시애틀시는 고가도로의 대안만 내놓지 않았다. 알래스카고가도로 철거사업을 진행하며 도심부의 워터프런트를 위한 복합화사업으로 이를 진화시킨 것이다. 시애틀시는 총 42억5000만달러를 투입해 워터프런트의 접근성을 높이고 경관을 아름답게 꾸밀 계획이다. 이외에 미국 보스턴의 빅딕(Big Dig) 또한 대표적인 고가도로 철거-지하도로 건설 사례다.
 
◆ 버려진 고가철도를 공원으로 조성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은 철거가 예정된 서울역 고가도로를 허물지 않고 친환경 공원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후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이러한 구상에는 전례가 있다. 도로와 철도라는 차이가 있지만 같은 ‘고가’였던 프랑스의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ee)와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파크(High Line Park)다.

지난 2004년 개봉한 영화 <비포 선셋>(Before Sunset)에는 9년 만에 재회한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가 아름다운 공중정원을 걸으며 서로의 감정을 재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름다운 사랑 얘기의 배경이 된 공중정원인 프롬나드 플랑테. 하지만 사실 이곳은 지난 1859년부터 1969년까지 사용되다 버려진 고가철도였다.

파리 12구역의 흉물이었던 이 고가철도의 운명을 바꾼 것은 지난 1980년대 일대 지역의 도시재생사업이다. 당시 조경건축가 자크 베르젤리(Jacques Vergely)와 건축가 필립 마티유(Philippe Mathieux)는 단순한 재활용이 아니라 공원을 문화공간으로 설계해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1991년 오픈한 프롬나드 플랑테는 고가 하단부의 아케이드를 상점가로 개조해 수공예 장인들의 아틀리에와 매장, 갤러리,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며 파리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버려진 고가철로가 총 길이 4.5km의 보행전용 공원이자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파크(High Line Park) 또한 비슷한 사례다. 하이라인고가철도는 지난 1930년대 화물을 실어나르기 위해 건설됐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1950년대 미국 전역을 연결하는 화물트럭 운송사업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트럭 운송량이 늘어나자 철도운송은 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하이라인고가철도는 버려졌다.

잔뜩 녹이 슨 폐허로 전락한 하이라인을 살린 것은 하이라인 인근에 살던 주민인 조수아 데이비드와 로버트 해몬드다. 이들은 지난 1999년 비영리단체인 ‘하이라인의 친구들’(Friends of the High Line)을 설립했다. 이들은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의 사례를 들며 뉴욕시장인 마이클 블룸버그를 설득했다. 10년이 지난 2009년 1구간(갠스부르트가-20번가)이 완공된 하이라인파크는 뉴욕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프롬나드 플랑테가 문을 열고 하이라인파크가 성공적으로 등장한 뒤에도 비슷한 프로젝트는 또 한번 등장했다. 미국의 시카고시는 하이라인처럼 폐선으로 전락한 뒤 버려진 블루밍데일 트레일(Bloomingdale Trail)을 개조하는 데 한창이다. 시카고시는 ‘The 606’프로젝트를 통해 버려진 고가철로를 올해 6월까지 총 길이 4.3km 길이의 산책로로 만들기로 하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