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취재해가도 결국은 높은 양반들 생각대로 되겠죠?" 서울역고가도로 공원화사업을 반대하는 남대문시장 상인들을 취재하던 중 한 상인이 기자에게 물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역대 서울시의 모든 민선시장은 자신의 임기 동안 서울시에 랜드마크라고 할 만한 무언가를 만들었다. 조순 전 시장의 여의도공원, 고건 전 시장의 월드컵공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청계천, 오세훈 전 시장의 DDP(동대문 디지털플라자) 등이 그것이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은 이 사업들은 시행과정에서 반발에 부딪혔지만 결국은 추진됐다. 시간이 지나며 랜드마크는 남고 비판은 잊혀졌다. 언론은 비판하는 목소리에 잠시 관심을 가졌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이슈에 우르르 몰려갔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런 랜드마크 설치에 한발 다가선 것처럼 보인다. 철거예정이던 서울역고가도로에 '공중공원'을 조성한단다. 멋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도로에 의지해 살아오던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생존권'을 요구하며 이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고가도로를 사용하지 못함으로써 생업에 큰 지장이 생기고 상권 자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이들은 교통대책이라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서울시는 대책을 마련하겠다지만 딱히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시민의 의견을 반영해 만든다는 서울역고가도로 프로젝트에 시장 상인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토론회는 일방적인 통보와 강의로 대체됐고 전문가 용역을 통해 연구했다는 연구결과는 생존권 요구의 목소리를 무의미한 불평으로 만들어 버렸다.

상인들의 우려는 '높은 분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서 비롯됐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서울 땅에서 변화에 대한 모든 공은 높은 분들의 차지였으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책임은 삶의 터전을 잃은 서민들이 짊어졌기 때문이다.


고가공원이 조성되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서울역고가도로는 주말 나들이를 나온 가족, 연인들로 가득 찰 것이다. 뭇 사람들은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차기 대선주자로 나설지 모를 박 시장의 공로라고 말할지 모른다.

서울시가 주장하는 것처럼 서울역고가 공원화 사업이 남대문시장의 상권을 되살릴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다. 하지만 상인들이 우려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서울시는 내년까지 '서울역고가도로 프로젝트'를 완성할 계획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고가도로 공원화를 '좋다' 혹은 '나쁘다'고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 의사결정과정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될 것이 있다. 변화를 피부로 느낄 사람들의 의견이다. 이들을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해선 안된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이들과의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