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제가 유지되는 데도 이 같은 역할을 해내는 집단이 있다. ‘히든챔피언’(Hidden champion)이 바로 그 주인공. 히든챔피언이란 대중이 잘 알지 못하고 규모도 작지만 특화된 경쟁력으로 세계시장을 선점한 강소기업을 일컫는다. 각 국가별로 기준을 정해 선정하며 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역할을 해준 덕분에 국가 경제는 원활하게 돌아간다.
히든챔피언은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Hermann Simon)이 책으로 내면서 유명해졌다. 히든챔피언에서 가장 강점을 보이는 국가는 독일이다. 지난 2013년 기준 전세계 2734개의 히든챔피언 중 독일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48%(1307개)다. 독일은 이처럼 많은 히든챔피언을 보유한 덕분에 세계적인 경제침체 속에서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GDP(국내총생산)가 1조4495억달러로 세계 13위임에도 히든챔피언 수는 23개로 초라하다.
그렇다면 독일은 어떤 국가적 지원이 있었길래 이처럼 수많은 히든챔피언을 보유할 수 있었을까. 또 한국은 왜 히든챔피언을 발굴하는 데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었을까. 히든챔피언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온 김지연 IBK기업경제연구소 경제학 박사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2014년 3월 열린 ‘한-독 히든챔피언 콘퍼런스’ . /사진=뉴시스 DB
- 히든챔피언에 대해 정의해달라.
▶히든챔피언이란 규모는 작지만 혁신·기술·품질 등을 앞세워 세계시장을 제패하는 강소기업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세계시장 점유율 33%이상, 기업수명 60년 이상, 평균 매출 4300억원 수준인 기업을 히든챔피언이라고 부른다. 히든챔피언은 일반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히든챔피언과 관련해 전세계에서 가장 강점을 보이는 국가는 단연 독일이다. 독일의 히든챔피언 업체의 경우 매년 10% 이상 성장할 정도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주요 상장기업의 성장률이 4.9%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매우 높은 수준이다. 또 대기업에 비해 5배 이상 높은 특허 수를 보유하고 이를 토대로 경쟁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독일 히든챔피언의 특징은 무엇인가.
▶독일 히든챔피언은 기업의 주력 생산품이 소비재가 아닌 산업재에 집중된 것이 특징이다. 독일 히든챔피언의 경우 기계·부품·화학 등의 산업재 분야에서 독보적인 시장점유율을 자랑한다.
또 장수기업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평균 기업연령이 60년 이상이며 히든챔피언의 30%가량은 100년 이상인 장수기업이다. 대부분 작은 중소기업에서 출발해 지금의 위치까지 올랐다.
이들은 틈새시장을 적극 공략한다. 앞으로 수요자가 어느 층에서 창출될지를 빠르게 파악한 뒤 거기에 맞춰 핵심역량을 집중해 기술 및 연구개발을 활발하게 진행한다.
- 독일이 히든챔피언 강국으로 발전하는 데 국가적인 지원이 있었나.
▶독일정부의 역할은 작은 기업이 고유의 특성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경쟁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독일 중소기업들은 지역 단위로 경쟁한다. 이처럼 작은 영역에 몰려서 경쟁하다 보니 경쟁이 과열되고 그 과정에서 경쟁력이 강화되는 선순환을 이뤄냈다. 또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거래도 주종관계가 아닌 동반관계로 발전하도록 방향을 잡아줬다.
다른 점에서 살펴보면 글로벌시장에서의 경쟁환경을 독려하기 위해 제조업생산품의 표준화를 이뤄낸 것도 고무적이다. 정부 차원에서 해외 수출품목에 대한 디자인 등을 표준화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규격의 차이로 인한 부담이 줄어든다.
연구환경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줬다. 산학연 연계프로그램을 통해 정부는 물론 정부유관기관, 대기업 연구소 등이 협심을 이뤄 그 안에서 만들어진 기술노하우를 중소기업에게 많이 알려준다. 이 같은 역할은 막스&프랑크, 프라운호퍼, 헬름홀쯔 연구소 등이 선도한다.
금융지원의 경우 독일은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전담은행(KfW은행)을 만들어 중소기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 이밖에 해외에 진출할 때도 단순한 자금지원 차원을 넘어 정보를 제공하거나 해외 활로 개척에 필요한 자원을 지원하는 역할도 한다.
- 우리나라에서 히든챔피언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 히든챔피언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두가지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가 히든챔피언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시각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단시간 내에 빠른 성장을 이루기 위해 대기업 위주의 성장을 추구했고 이 과정에서 정경유착 등이 발생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 국내 중소기업의 경우 특허를 보유하거나 우수인력을 유지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또 독창적인 아이템을 통해 성장의 틀을 마련해도 대기업에서 비슷한 제품을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공급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자금력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밖에도 정부의 과도한 상속세 부과로 인해 국내 중소기업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중소기업이 커지는 과정에서 상속이 이뤄지면 그동안 벌어놨던 자금 중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에 이 경우 기업의 기반 자체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
- 한국이 앞으로 히든챔피언 강국으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다른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고 본다. 기존의 정책 중 활용하지 못하고 버려진 것은 없는지 살펴보고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 있게 적용되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다만 중소기업끼리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충분히 조성된 상태에서 중소기업이 경쟁력 있는 상품을 개발해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근무환경도 개선해야 한다. 전에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의 근로자들이 갖는 자부심이 상당하다는 걸 느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근로자와는 상반된 분위기였다. 국내의 경우 대기업 선호현상이 뚜렷하지만 독일은 그렇지 않다. 평균 급여도 대기업의 85% 수준이 유지된다. 또 자신이 소속된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굉장히 높고 이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정도로 이직률이 매우 낮다. 우리나라도 중소기업 근로자의 근무환경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개선함으로써 중소기업 근로자의 자부심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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