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주류가 쓴 반전드라마.” 제25대 중소기업중앙회장 선거는 역대 최고의 이변으로 꼽힌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박성택 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이 당선됐기 때문. 중앙회 집행부에 소속되지도 않았던 그는 선거 직전까지도 유력 당선 후보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존재감도 미미했다. 이번 출마 역시 ‘당선’보다는 차기선거를 위한 지명도 확보 기회 정도로 평가 절하됐다. 하지만 선거 당일, 그는 진심어린 공약으로 선거인단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드라마틱한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 “1표당 200만원, 나 좀 뽑아달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박 회장이 선출됐지만, 이면에서는 부정선거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가 선거인단에게 지지와 추천을 부탁하며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금품을 살포했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 것. 급기야 검찰에 고발당하는 사태로 번졌다. 528명 선거인의 표심에 의해 차기 회장의 당락이 좌우되는 만큼 불법선거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기적의 드라마 vs 부정선거 의혹. 중소기업중앙회장에 당선된 박성택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을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이다. 그는 지난달 27일 치러진 제25대 중소기업중앙회장 선거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서병문 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과 이재광 전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제치고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사진제공=중소기업중앙회
◆LG맨에서 ‘300만 기업’ 수장으로
그의 당선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지난 1월29일 선거 전 예선이었던 회장 추천 결과 박 회장이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을 때도 그 결과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선거 당일 투표에서도 마찬가지. 박 회장이 1차 투표에서 가장 높은 표를 획득해 결선에 진출했지만 오히려 2위였던 이재광 이사장에게 더욱 기대가 모아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종 개표 결과는 반전. 박 회장의 지지율은 60%에 육박했다.
박 회장은 ‘LG맨’이다. 지난 1957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그는 농부였던 아버지의 소원대로 연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LG금속(현 LS니꼬동제련)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과장까지 승진도 순조로웠다.
그러나 1980년대 말, LG그룹 21세기 미래비전수립 태스크포스 활동을 하면서 그의 인생관이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한다. 지난 1990년 그는 안정적이던 대기업 과장자리를 박차고 나와 돌연 주택용 건축자재를 수입·유통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60%에 머물던 주택보급률이 급증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레미콘 및 아스콘 제조기업인 산하를 세우고 직접 골재생산에 나서는 등 사업을 확장해 현재는 연매출 530억원 규모의 4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아스콘사업 외길을 걸으며 업계를 대표하는 자리에서 일궈낸 나름의 성과도 있다. 수년간 노력으로 정부인증을 민간으로 이양시키는 쾌거를 이뤄낸 것. 이는 지난 2008년부터 정부가 추진한 국가표준 민간이양 정책의 첫 사례가 됐다.
중소업계에서는 박 회장의 이러한 뚝심을 높이 평가한다. 그가 선거 당시 슬로건으로 내세운 ‘선진국형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실현 가능성에도 큰 기대가 모아진다.
◆1표당 200만원, ‘반전 없는’ 부정선거?
물론 우려도 교차한다. 그가 중앙회 내부에서 주류가 아니었던 만큼 전국 각 조합들을 이끌며 화합·소통을 이루는 리더십을 발휘하기엔 역부족이란 분석이다. 더욱이 이번 선거에 사전 추천제가 도입되면서 회원들 간의 반목과 갈등이 더 심해진 상황이다.
선거과정에서의 잡음도 안고가야 할 문제다. 예비후보만 8명에 이르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이번 선거는 특히 ‘돈 선거’라 불릴 만큼 부정선거 의혹이 짙게 드리워졌다. 선거 기간 “중앙회 회장이 되려면 20억원 쓰는 건 기본”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돌 정도였다.
/사진제공=중소기업중앙회
박 회장 역시 예외일 순 없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박 회장 측근이 선거인단에 금전을 제공한 정황을 포착하고 내사에 착수한 끝에 선거 하루 전날 검찰에 고발한 것. 박 회장의 선거 캠프에서 활동하던 A씨는 선거인단에 박 회장의 지지와 추천을 부탁하며 현금 200만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역 내 조합 이사장들에게 500만~1000만원의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도 있다.
박 회장은 당선 직후 여러 부정 의혹들에 대해 “유언비어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검찰에서 선거법 위반 관련 수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결과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검찰 수사를 통해 박 회장이 금품수수 등에 연루됐을 경우 중소기업협동조합법상 그의 당선은 무효 처리된다.
◆막강한 중통령 권한, ‘그림의 떡’ 되나
끊이지 않는 불법선거 논란은 중앙회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국내 경제4단체 중 하나다. 중앙회장이 되면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등 다른 경제단체장과 함께 국가 행사에서 부총리급 의전을 받는 등 막강한 권한을 지닌다.
중소기업계를 대표해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각종 경제회의에도 참석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등 정부가 설치한 각종 위원회의 위원 자격도 갖게 된다. 이 뿐 아니다. 홈앤쇼핑 이사장 겸임은 물론 수조원대 노란우산공제 관리권, 산하 조합 감사권 등을 쥐고 매월 1000만원의 대외활동수당과 법인카드, 에쿠스 차량 이용 등도 지원 받는다.
결국 반전 없던 부정 선거라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박 회장에겐 이 모든 권한이 ‘그림의 떡’으로 남을 수도 있게 됐다. 330만 기업을 대표하는 이른바 중통령(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고도 그가 내딛은 첫발이 무겁기만 한 이유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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