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 치킨 / 대학입학, 군대, 졸업, 치킨 / 졸업, 취직, 정리해고되고 퇴직금 갖다 치킨 / 문이과 예체능 안 가리고 다 치킨 / 1등부터 꼴등 다 치킨 / 인생 발단 전개 위기 절정에 치킨 / 기승전 치킨” 지난해 초 발표된 힙합가수 디템포의 노래 ‘치킨’의 가사다.

‘기-승-전-치킨’, ‘닭튀김 수렴공식’ 등의 신조어는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대한민국 직장인의 말년을 희화하며 통용된다. 이 말은 처음엔 IT 붐이 일던 때 업계에 뛰어든 청년들이 IT 붐이 꺼진 후 팍팍한 삶을 한탄하며 자조적으로 쓰던 말이다. 하지만 몇년 새 이는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에게 해당되는 말이 됐다.


모든 사람의 인생이 결국은 치킨집으로 귀결된다는 이런 말의 행간을 살펴보면 ‘치킨집’이라는 말은 단순히 ‘튀긴 닭을 파는 곳’이 아닌 자영업, 그중에서도 특별히 익힌 기술이 없고 창업자금이 부족한 소자본 자영업자를 상징하는 말로 통용된다.


◆전세계 맥도날드보다 많은 치킨집
치킨집은 왜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의 상징이 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많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치킨전문점 수는 2만2529개에 이른다. 이는 집계된 16개 업종 중 편의점(2만5039개)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치킨전문점까지 포함하면 수는 대폭 늘어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치킨전문점 수는 10년간 연평균 9.5% 늘어나 약 3만6000개에 달한다. 이는 같은해 기준 맥도날드의 전세계 매장 수(3만5429개)보다도 많다.

하지만 이마저도 우리나라 모든 치킨가게의 숫자라고 단정하기 힘들다. 치킨만 판매하지 않고 다른 품목과 치킨을 같이 판매하는 경우를 더하면 이는 대폭 늘어난다. 이른바 ‘호프집’에서 술안주로 치킨을 제공하거나 피자 등 타 음식과 치킨을 함께 판매하는 경우는 이 수치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수치 중 실제 치킨가게 수에 가장 근접한 것은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업소 수다. 네이버 지도에 ‘치킨’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자 6만4468건이 검색됐고 다음 지도 검색결과 7만5079건이 나왔다. 

/사진=뉴시스 서재훈 기자

◆‘가장 쉬워 보여’ 너도 나도 치킨집
수많은 자영업자가 ‘치킨집’에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가 그만큼 치킨을 많이 먹는다는 방증일까. 우리나라의 닭 소비량을 살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지난해 기준 국가별 닭 소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1인당 평균 12.6kg를 먹었다. 이는 치킨가게에서 주로 사용하는 9호 닭(820~980g) 기준으로 약 14마리에 해당한다. 지난 2000년 1인당 6.9kg에 불과했던 소비량이 15년 새 무려 84%나 급증한 것은 놀랄 만하지만 이웃나라 일본(15.7kg)보다 적고 브라질(39kg), 미국(44.6kg)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퇴직금을 손에 들고 길거리에 나온 수많은 자영업자가 치킨업계에 뛰어드는 이유는 가장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창업이 쉽다는 것은 자본과 기술, 두가지 맥락에서다.

우선 타 업종에 비해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한 점이 창업희망자를 유혹하는 가장 큰 요인인데 자본이 적게 들어간다는 것은 ‘배달’에 초점이 맞춰진 우리나라의 치킨 소비구조 때문이다.

사실 치킨가게라고 해서 부대시설의 비용이 적게 들 이유는 없다. 오히려 튀김기계, 염지기계 등을 별도로 준비해야 해 일반적인 가게의 주방구성에 비해 비용이 더 드는 경우도 있다. 인건비도 가게의 규모와 시스템에 따라 차이가 날 뿐 치킨가게 여부와는 큰 관계가 없다.

치킨가게가 소자본 창업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유는 매장규모를 줄이고도 배달을 통해 매출을 유지할 수 있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자본이 부족한 사람들이 매장 크기를 줄이고 배달비중을 높인 점포를 차려 매장규모 대비 매출규모가 큰 점포를 운영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자영업자가 치킨업종에 몰리는 두번째 이유는 기술적인 측면이다. 치킨의 조리는 흔히 사람들에게 ‘간단한 것’으로 인식된다. ‘닭을 손질해 뒀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튀겨낸다’는 얼핏 보기에 단순해 보이는 치킨집의 시스템은 요식업 경험이 없어 갈팡질팡하던 창업주를 끌어들이는 요소다. ‘튀기면 다 맛있다’는 요리계의 불문율은 인건비에 투자가 아쉬운 이들에게 ‘조리사 없이도 맛있게 튀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치킨집 창업에 몰린 예비창업자들. /사진=뉴시스 DB

◆프랜차이즈로 가는 창업자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치킨가게 창업에 뛰어든 자영업자는 으레 준비과정에서 당황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쉬운 일이 아니어서다. 메뉴개발부터 ‘멘붕’에 빠지기 일쑤고 애써 조리법을 알아낸다 해도 생각보다 복잡한 조리과정에 자신감이 사라진다. 가게를 차린다고 해도 손님이 그냥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홍보, 마케팅 등 준비 없는 창업자에겐 모든 것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프랜차이즈업체에 SOS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자가 만난 A씨(42)는 지난해 10여년간 다니던 중견기업을 그만두고 최근 프랜차이즈 치킨매장을 창업했다. 처음엔 프랜차이즈를 고려하지 않았으나 준비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후 프랜차이즈업체에 손을 내밀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시작하려니 너무 막연했다는 그는 “프랜차이즈의 힘을 빌리니 복잡한 과정이 단순해졌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동일한 맛을 낼 수 있어 좋다”며 “딱히 홍보하지 않아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본사 콜센터를 통해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마진이 너무 낮은 것 같아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A씨와 같은 창업주들의 수요를 발판 삼아 국내 치킨프랜차이즈업체들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대표적인 치킨 프랜차이즈 BBQ를 운영하는 제너시스BBQ그룹은 ‘치킨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1913억원에 달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